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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여긴 어디지?” 막 깨어난 성지원은 낯선 천장이 보이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왔고 몸 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얼른 일어나야 했다. 내일이 바로 그녀와 문정우의 결혼식이었으니까. 6년 동안 바라고 바랐던 것이 드디어 이뤄지게 되니 절대 늦추거나 무슨 일이 생겨서도 안 되었다. 그 시각 문밖에서 문정우는 벽에 기대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들어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만들지 말고.” 남자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 꼭 이렇게 해야 할까요?” 안에 있는 여자는 해성시에서 미인으로 유명한 재벌가 딸이었다. 게다가 문정우의 약혼녀였고 내일이 바로 결혼식이지 않은가. “들어가.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문정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부드럽기만 했던 그의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누구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이거 놔! 살려주세요...” 문밖에 있는 문정우는 성지원의 절망 가득한 목소리를 듣고도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망가져 상처 가득 받은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성지원, 날 탓하지 마. 너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는 성준혁이 한 일을 성지원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 일은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문정우, 설희를 감금한 범인을 찾았어.” “누구야?” 문정우의 그림자가 침대에 길게 나타났다. 그는 시선을 돌려 조용히 눈 감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안색은 창백했고 야위었을 뿐 아니라 온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했기에 물어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백하민은 이를 빠득 갈며 세 글자를 뱉어냈다. “성준혁.” 성준혁은 바로 그의 약혼녀인 성지원의 아버지였다. “알았어.” 문정우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넌 설희 오빠니까 물을게. 어떻게 하고 싶어?” “똑같이 성지원을 납치해서 성준혁이 내 동생한테 했던 짓을 전부 딸인 성지원에게 10배로 갚아주고 내가 느낀 고통을 느끼게 할 거야.” 그러나 한참 지나도 문정우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백하민은 잔뜩 화가 난 채 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러지 못하겠어? 하긴, 넌 내일 성지원과 결혼하잖아. 망설여지는 것도 이해가 돼. 하지만 내 동생은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내일 결혼식은 취소될 거야.” 문정우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너와 설희 일은 내가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할 거고.” 성준혁이 백설희를 가둬둔 그 날부터 그동안 성씨 가문에서 받은 모든 은혜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성준혁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한편 방 안에 있는 성지원은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옷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 더는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살려줘... 정우야, 살려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려 머리칼에 떨어졌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내일이면 정우랑 결혼해서 부부가 될 수 있는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자신을 부르는 성지원의 목소리에 문정우는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어느덧 밤이 지나가고 성지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문정우는 저도 모르게 6년 전 그날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의 성지원은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 같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확고한 눈빛을 하며 자신을 향해 다가와 말했다. “내 약혼자는 쟤로 할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문씨 가문의 머리가 똑똑하고 재능이 많은 장손이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성지원은 확고하게 그를 선택했고 가문에서 버렸다시피 했던 그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문정우는 담뱃불을 끄고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됐어. 그만하고 나와.” ‘성지원, 6년 전에 날 구해준 그 은혜 덕분에 여기서 끝내는 줄 알아.' 백하민은 구석에서 나와 실망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하, 설마 마음이 약해진 거야? 설희가 무슨 짓을 당했는데 고작 이런 거로 복수하는 거냐고. 정말 공평하다고 생각해?” 문정우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설희가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우리가 이렇게 복수하는 것도 원하지 않을 거야. 내일 결혼식은 어떻게든 취소해서 너와 설희를 만족시켜 줄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침. “정우야 살려줘...” 성지원은 비명을 지르며 악몽 속에서 깨어났다. 머리칼은 이미 흘러내린 눈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살펴본 그녀는 전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목이며 가슴 쪽에도 아무런 상처가 없었고 방 또한 낯선 방이 아닌 그녀의 방이었다. ‘그게 꿈이었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한 기분이지?' 너무도 생생해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만약 꿈이 아니라면 찢긴 옷이 어떻게 멀쩡할 수 있고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문정우가 문밖에서 가만히 있을 리도 없었다. 백설희, 그녀도 아는 사람이었지만 오랫동안 들어본 적 없었다. 오늘은 그녀와 문정우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기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꿈을 꾼 것이라 여겼다. “지원아, 얼른 일어나야지. 오늘은 너와 정우한테 아주 중요한 날이지 않니. 늦으면 안 된단다.” 이때 김희영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악몽의 충격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성지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그 모든 것이 꿈이라며 다행으로 여겼다. 두 시간 후, 성지원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행복한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었다. 김희영은 꼼꼼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거울 속에 비친 아름다운 딸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성지원은 해성시에서 외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168cm라는 적당한 키에 가느다란 팔과 다리, 몸의 굴곡도 완벽해 해성시에서 제일 아름다운 재벌 2세를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성지원을 언급할 정도였다. 피부도 뽀얗고 보드라웠고 깐 달걀처럼 탄력도 있었다. 그녀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예쁘다며 감탄하곤 했었다. “거울 좀 봐. 우리 딸 정말 예쁘네.” 김희영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딸, 이렇게 시집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앞으로 문 서방 잘 내조해서 행복하게 살아. 아이도 순풍순풍 많이 낳고. 집안에 웃음소리가 가득하게 살아.” 성지원은 미소를 지으며 김희영의 손을 잡았다. “엄마, 전 꼭 행복하게 살 거예요. 정우도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될 거고요.” 김희영은 딸 시집보내기 아쉬운 얼굴로 성지원을 보면서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원아, 만약 걔가 널 괴롭히면 엄마랑 아빠한테 말해. 엄마랑 아빠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러자 성준혁도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그만해. 이렇게 좋은 날에 당신은 왜 그런 말을 해.” 성지원은 곧 아이를 낳을 김희영의 배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가득 번져 있었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정우가 평생 잘해주겠다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한걸요.” 22살의 성지원은 단 한 번도 문정우를 의심해 본 적 없었다. 문정우는 재능이 아주 많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심지어 다정하기도 해 완벽한 남자친구였고 오늘만 지나면 그가 자신에게 아주 완벽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꾼 악몽에 관해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가 문정우의 곁에 있은 시간만 해도 자그마치 6년이었다. 6년 동안 두 사람에게 수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고 결혼까지 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 시각 문정우의 방에는 미모가 아름다운 여자가 누워있었다. 여자는 야위었고 하얀 피부에는 시퍼런 멍이 얼룩덜룩 가득했다. 볼도 빨갛게 부은 것을 보아 누군가에게 맞은 것이 분명했다. 이 여자는 바로 성지원이 꿈속에서 본 백설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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