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나는 머리가 찌근거려 고개를 저었는데 그 순간 머릿속으로 가시 돋친 말들이 떠올랐다.
“너같이 변변찮은 집안 출신이 우리 박씨 가문에 감히 어울릴 수나 있어?”
“윤성이는 해성시에서 가장 앞날이 유망한 청년이다. 외국 공주를 데려와도 모자람이 없을 애인데 하필 그렇게 평범한 여대생을 데려와?”
“민서 할아버지랑 나는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다. 돌아가기 전 손녀를 나한테 부탁했고 윤성이는 내가 가장 아끼는 후계자라 내 눈엔 오직 윤성이만이 그 애를 지켜줄 수 있어!”
“그깟 송지연이 뭐라고? 내가 힘들게 키운 후계자야. 그런 애 따위가 어울릴 리 없지!”
그 말들이 뇌리를 파고들며 맴돌자 머리가 더욱 욱신거렸다. 비틀거릴 뻔한 순간 박윤성이 나를 붙잡았는데 검게 가라앉은 그의 눈동자에서 감정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날 걱정할 리가 없어. 내가 자기 할아버지 앞에서 창피하게 굴까 봐 그러는 거겠지.’
내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억지로 몸을 바로 세우자 박윤성이 내 귀에 낮게 말했다.
“인사해.”
“회장님, 안녕하세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특히 집사가 눈이 휘둥그레졌고 박윤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할아버지라고 불러.”
그가 또다시 내 귀에 속삭이듯 훈계하자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고 박영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싫으면 그만둬. 쯧쯧, 속이 좁긴!”
그 말에 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를 기억하지 못해도 저 말에 담긴 뜻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했기에 내가 그를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다만 그에 대한 감정이 싫증이 아닌 두려움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결혼 후 이 사람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아왔길래 내가 이토록 망가진 걸까? 이렇게 명백하게 나를 얕잡아보는 사람을 마주하고서 내 안에서 먼저 피어오른 감정이 싫증이나 반감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니.’
내가 별일 없으면 돌아가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갑자기 저쪽에서 맑고 또렷한 여자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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