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주변은 온통 술렁이는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그 와중에도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선명히 들렸다. “오빠, 미안해, 내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조민서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 앞엔 삼각형 유리잔이 놓여 있었고 그 안의 하늘빛 술은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그 옆엔 박윤성이 앉아 있었고 언제나처럼 냉정하고 깊은 인상을 지닌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다소 찌푸린 눈썹 사이로 불편한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때 소은하가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다. “지연아...” 그 소리에 저쪽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는데 내가 있는 걸 본 순간 박윤성은 눈빛이 달라지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병원 간다더니 왜 여기 있어?” 그의 목소리엔 노골적인 추궁이 섞여 있었다. 그 눈 속에 짙게 깔린 음울한 기색이 스치자 나는 차갑게 웃으며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박윤성을 무시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는지 모두 얼어붙은 듯 나를 바라봤다. 소은하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뒤따라왔다. “지연아...” 나는 괜찮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안심시키고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박윤성은 표정이 금세 굳어져 단단히 손아귀에 내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왜 여기 있는지 묻고 있잖아.”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거 놔!” 이미 들킨 마당에 거짓말을 이어갈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더는 설명할 생각조차 없었다. “내가 어딜 가든 네가 간섭할 권리는 없어. 가고 싶은데 가는 거야!” “그럼 왜 거짓말했어?” “네가 나 못 나가게 했잖아. 거짓말 말고 내가 뭐 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말하자 박윤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