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따끈한 밥에다 조기를 얹으면, 캬~ 이게 또 짭짤하고 고소하니 갓 지은 밥하고는 궁합이 딱이지~” 여름은 먹방을 계속했다. 귀여운 얼굴로 열심히 먹으며 종알거리니 요즘 인기 있다는 먹방보다 더 식욕을 자극했다. 이제 최하준은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침 이때 지오가 식탁으로 폴딱 올라와 꼬리를 살랑거렸다. 지오도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아채고 최하준이 일어나서 서랍에서 사료를 꺼내 그릇에 담아 지오 앞에 놓아 주었다. 지오는 냄새를 한 번 맡아보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더니 여름을 빤히 쳐다보았다. 최하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여름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조기 살을 발라서 건네자 얼른 받아 맛있게 먹었다. “아유, 착하지.” 여름은 지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아빠보다 품위 있구나.’ 민망해진 최하준은 조기 살 먹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입으로 명란 계란말이가 쏙 들어오자 확 인상을 썼다. “아니⋯.” 여름은 얼른 명란 계란말이를 상대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화가 나서 뱉으려는데 고소한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저도 모르게 씹기 시작했는데 보드라우면서도 탄탄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이런 명란 계란말이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본가의 주방장이 별별 요리를 다 할 줄 알아도 이렇게 맛있게 하지는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버터처럼 고소한 향이 나는데 느끼하지도 않았다. “맛있죠?” 여름이 아래턱에 손을 받치고는 자신 있다는 듯 물었다. 맞은 편에 앉은 여자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고 최하준은 얼른 정색을 했다. “그냥 그렇군요.” 그러고는 계란말이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한 조각으로는 부족했다. 여름이 눈을 깜빡였다. “그저 그렇다면서요?” “이렇게 많이 만들었는데 혼자서 다 먹을 수 있습니까? 음식 남기는 거 질색입니다.” 최하준이 침착하게 답했다. 뭐가 말하려고 여름이 막 입을 여는데 말을 막았다. “식사 시간에 시끄럽게 떠들지 맙시다.” “⋯⋯.” ‘이런 걸 두고 바로 염치가 없다고 하는 거지.’ 여름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침에 밥 안 먹는다던 사람이 누구시더라? 이제 보니 밥에 국에 겉절이, 시금치, 계란말이, 감자볶음까지 알아서 잡숫고 계시면서 양심도 없지.’ 원래 최하준은 맛만 보려고 했는데... 겉절이며, 시금치, 감자볶음까지 시켜 먹는 음식과는 비교가 안 됐다. ‘음식을 이렇게 잘 할 줄 몰랐는걸.’ 편견을 내려놓는 중에 여름이 최하준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쭌,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저녁 식사 약속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름은 화도 나지 않았다.대기업의 회장이니 바쁜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마음은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여름은 얼른 식탁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최하준이 집을 나서려는데 여름이 가방을 들고 방에서 뛰어나왔다. “쭌, 나 좀 태워줄 수 있어요? 저도 출근해야 하거든요. 귀찮으면 가다가 어디 지하철역에 적당히 내려주시면 돼요.” 사실 별로 태워주고 싶진 않았지만, 아침에 얻어먹은 밥도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갔다. 벤틀리나 마이바흐를 타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최하준은 하얀 중형차 앞에 멈춰 섰다. “이게 쭌 차예요?” “네,” 최하준은 문을 열더니 운전석에 앉았다. 여름도 얼떨결에 차에 올랐다. “어떻게 이런 차를 살 생각을 했어요?” ‘글로벌 기업의 후계자가 아니었던가. 어째서 비싸지도 않은 차를 타는 거지?’ “가격도 좋고 기름도 덜 듭니다.” 최하준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생활력 있네요. 역시 내 남편이라니까.” 흘끗 보니 대쉬보드에 싸구려 휴지가 놓여있었다. 위에는 ‘XX 주유소, 사장님이 미쳤어요. 최저가 보장’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이상했다. ‘요즘 부자들 사이에서 근검절약이 유행인가? 난 아껴 쓸 줄도 모르고 여태 모은 돈이 없어서 집에서 대접을 못 받는 건가?’ 여름은 점점 더 깊이 생각에 빠졌다. 10분 뒤 차가 지하철 입구에 멈췄다. 최하준이 여름을 돌아보았다. “내리십시오.” 여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예의 상 한 말인데 정말 지하철 역에서 내리라고 하다니. 아, 진짜 대단하네.’ 화가 났지만 억지로 웃음을 띠었다. “쭌, 태워 줘서 고마워요.” 차에서 내려 돌아보니 차는 벌써 멀어지고 있었다. ‘망할⋯. 아오, 얄미워.’ ****** 여름은 9시가 다 되어서야 작업장에 도착했다. 여름은 유학에서 돌아와 내내 TH디자인그룹에서 일했다. 집안에서 가장 큰 사업이었다. 막 호텔에 들어서는데 프로젝트 매니저인 이민수가 묘한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는 출근 안 해도 돼. 이제 이 프로젝트는 자네 소관이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이민수가 여름의 뒤쪽을 쳐다보더니 눈을 반짝 빛냈다. “여경이 왔니?” 여름이 홱 돌아보니 강여경이 하얀 V넥 니트를 입고 들어왔다. 그녀는 같은 색 셔츠를 입은 한선우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햇살이 두 사람을 비추는데, 둘은 그야말로 완벽한 커플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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