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쥔 것 같았다. 여름은 아파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특히나 한선우의 그 싸늘한 시선이 쓱 훑고 지나가자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민수가 허둥지둥 강여경에게 다가갔다. “본부에서 공지 받았어. 이번 프로젝트는 여경이에게 맡긴다면서?” 움찔하더니 여름의 시선이 강여경에게 꽂혔다. “화내지 마라, 얘.” 강여경이 놀랐다는 듯 주춤주춤 몇 걸음 물러섰다. 한선우가 얼른 강여경의 허리를 받쳤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열불이 뻗쳤다. “강여경, 남자도 뺏어 가고, 내가 따온 프로젝트도 강탈하고, 뭘 어쩌고 싶은 건데? 그렇게 남의 손에 든 것만 보면 뺏고 싶어?” “아니 선우가 언제부터 자기 남자친구였다고⋯.” 이민수가 비웃었다. “그냥 혼자서 죽자 살자 따라다닌 거지.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는 선우가 호텔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받아온 거 사람들이 다 아는데⋯.” “오빠, 그만 해요.” 강여경이 급히 이민수에게 눈짓했다. “할 말은 해야지. 이제 네가 선우 약혼녀인데, 프로젝트는 네가 맡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오빠도 그렇게 생각해?” 강여경이 가만히 있는 한선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애초에 한선우가 주 대표와 인사를 시켜줘서 프로젝트를 받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사실 주 대표와 한선우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여름이 매달 주 대표를 찾아가 밥 사고, 술 사고, 디자인을 열 번도 넘게 수정해 가며 간신히 따온 프로젝트였다. 한선우가 눈썹을 슥 올리더니 말했다. “뭐, 주 대표가 내 얼굴 봐서 일을 준 건 맞지..” 이민수가 비아냥거렸다. “개나 소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믿을 수가 없어. 내가 직접 아빠한테 가볼 거야.” 여름은 회사로 차를 몰아 강태환을 찾아갔다. “왜 강여경에게 호텔 프로젝트를 주신 거예요? 내내 제가 책임지고 있었는데요. 이번 프로젝트에 제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시잖아요?” 한창 업무 중인데 여름이 벌컥 들어오자 강태환은 기분이 언짢았다. “너한테는 따로 맡길 일이 있다. 진 대표네 별장 일을 네가 맡아.” “그 별장을 강여경에게 주셨어야죠. 이쪽 일에는 경험도 없는데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야⋯.” 태환이 책상을 탕 치며 화를 냈다. “말끝마다 강여경, 강여경! 걔는 네 동생이다. 네가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엄마가 그러더니 이런 걸 말한 게로구나!” 멍하니 있던 여름이 억울해서 울먹였다. “남자친구를 뺏어 가더니 이제는 내 프로젝트까지 뺏어가는데, 친하게 부르고 싶겠어요?” “네 프로젝트를 뺏어가다니 무슨 소리야? 모두 TH디자인그룹 프로젝트지. 내가 회장이니 맡기고 싶은 사람에게 맡기는 거다. 선우도 그렇지. 애초에 네 남자친구도 아니었잖아. 선우가 여경이를 택한 거다.” 여름의 속마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회사 주식의 80%를 강여경에게 주지 않았다면 선우 오빠가 강여경한테 가지도 않았어요.” 강 회장은 냉정했다. “그동안 여경이가 얼마나 고생을 했니? 이제부터라도 따뜻하게 대해줘라. 어제 일도 사과하고.” 여름은 이를 악물었다. “못 해요.” 강태환이 화를 냈다. “못 하겠다면 나가거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TH디자인을 떠나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분노한 강태환의 목소리가 여름에게 내리 꽂혔다. 여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 나갑니다. 제가 가진 자격증이 몇 갠데 일자리 하나 못 찾겠어요?” 여름은 분노한 채로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되는 대로 종이 박스에 물건을 쑤셔 넣고 올라갔다. 가는 길에 본 사람들이 다들 손가락질을 했다. “강여경을 미워한다며? 그래서 회장님한테 쫓겨났대!” “강여경에게 왜 그런대? 어릴 때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해서 엄청 고생하며 자랐다던데⋯.” “그러니까 말이야! 강여경 되게 온순하고 착하더라고. 어제도 우리 야근한다고 야식을 사주더라니까.” “쟤는 다 자업자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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