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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화

“아니지. 내가 너에게 정말 면목이 없다.” 여름의 시선이 육민관의 잘린 손가락으로 향했다. “나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널 노리는 사람도 없었을 텐데.”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너무 방심했던 탓이죠.” 육민관이 웃었다. “아까 틀어주신 영상을 보니까 그 납치범 모습이 곽철규가 죽던 날 봤던 그 사람들 모습인 것 같아요.” 여름은 깜짝 놀랐다. “역시나 그놈들이구나. 아직 백지안 배후의 인물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해서 아쉽네.” “돌다리도 두드려 가며 건너야죠.” 육민관이 ‘쓰읍’하더니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치료 다 받으면 돌아와.” 여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 누님 잘 살펴드려. 누님께 요만큼이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가만 안 둔다, 진짜!” 육민관이 매섭게 경고를 하더니 경찰을 따라 나갔다. ---- 한편 하준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준의 시선은 멍하니 강여름 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들 업계 최고의 레전드였던 최하준이 패소해서 얼이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하준이 승소할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준의 말솜씨라면 어떤 증거가 제시됐어도 반격할 여지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증거가 제시되기 시작하자 하준은 육민관이 정말 모함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준은 처음부터 정확히 조사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날 동굴에서 육민관이 지안에게 폭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본 데다 지안이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사건 내용을 단정해 버린 것이다. 나중에 육민관이 강여름의 보디가드이며 얼마 전 호프집에서 찍힌 육민관과 강여름의 사진을 보고 나자 완전히 강여름의 사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게다가 여름은 백지안과 자신을 미워하니 동기마저 충분했던 것이다. 그 바람에 하준은 차안의 지문을 확인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납치 과정의 어떤 CCTV에도 육민관의 얼굴은 찍혔는지 확인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건 음모야. 아마도 주 변호사가 말했던 것처럼 강여름과 내 사이의 애정을 박살낼 목적으로 꾸며진 음모야.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흐른 건 아니었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육민관의 손가락을 잘랐을 때부터? 직접 지안이의 소송에 변호를 맡아주기로 한 때부터? 차 실장과 김 실장이 말했었지 육민관은 여름이에게 가족과도 같은 사람인데 지나치게 학대하면 안 된다고. 김 실장이 내가 지안이 소송을 변호하게 되면 두 사람 사이는 끝장날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어. 내가 차츰차츰 우리 둘의 관계를 절벽으로 몰아붙인 거야. 하지만 나도 내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어. 지안이가 육민관의 손가락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백윤택이 내게 소송을 맡아달라며 그렇지 않으면 육민관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될 거라고 말했을 때 다 내가 하겠다고 했어. “준, 그만 가자.” 백지안은 불안한 듯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싸늘하게 식는 하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지안이 손을 뻗어 하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하준은 지안의 손을 피해버렸다. 백지안은 흠칫하고 몸이 굳어졌다. 백윤택이 다급히 말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우리 지안이가 지금 얼마나 불쌍한데. 오늘 당한 걸로도 모자란다는 거야?” “그래요. 안 됐죠.” 하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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