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화
백윤택은 다급해졌다.
“지안아, 이제 어떡하지? 저 세 명이 다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는데. 우리 둘의 힘만으로 헤쳐나가기에는 이제 재계가 그렇게 만만치 않은데.”
“하준이가 그냥 잠깐 화가 나서 그래. 날 그냥 버려둘 리가 없어. 그리고 송영식은 일시적으로 갇힌 것뿐이야. 걜 평생 가둬둘 수도 없을 거 아냐?”
백지안이 내뱉었다.
“에이, 이번 참에 너랑 최 회장이 거의 재결합에 성공할 뻔했는데, 강여름이 그렇게 치고 나올 줄이야.”
백윤택이 조심스러벡 여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그 진짜 납치법 둘은 네가 고용한 사람이야..”
“헛소리 작작해! 난 아무짓도 안 했다고.”
백지안이 백윤택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그래, 알겠다.”
백윤택은 어째를 으쓱해 보였다. 백지안이 인정을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백유택이 떠나고 나서 백지안은 즉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전화를 걸었다.
“그쪽 사람들 일을 너무 대충 하는 거 아니에요? 지난번에 곽철규 건 도 그러더니 이번에는 블랙박스에 찍히고 다니고. 육민관을 죽여버렸어야 하는데 법정에 나와서 판결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고요. 이제는 하준이가 날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정말 당신들 때문에 수명이 준다고요.”
“수명이 준다고?”
수화기 건너편 남자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악랄한 계획을 세웠을 때는 최악의 결과도 감수할 수 있었어야지. 이번 납치 계획은 당신이 갑자기 제안한 거잖습니까? 계획부터 준비하기까지 시간이 반나절 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를 합니까? 그 부분은 왜 진작에 얘기를 안 했죠? 시키는 대로 CCTV 영상은 다 삭제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단지에 세워진 모든 차의 블랙박스를 뜯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그 차를 태워버렸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건데.”
백지안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말했다.
“뭐라고요? 차를 태워버리면 최하준이 어떻게 단 시간 내에 당신을 찾아냅니까? 육민관은 정말 약물을 맞았으니 최하준이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당신은 정말 육민관 손에 남아나지도 않았을 거요.”
남자가 낮은 소리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
백지안은 할 말이 없었다.
그쪽에서 이어서 말했다.
“백지안 씨, 난 당신을 두번이나 도왔습니다. 하지만 최하준을 되찾을 능력은 안 되는 것 같군요. 다시는 연락하지 마십시오. 나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이니….”
“내가 왜 사용 가치가 없어요? 최하준이 없더라도 송영식은 일편단심으로 날 좋아한다고요. 송영식의 삼촌이 일단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쿠베라의 지위는 단숨에 상승할 거예요.”
백지안이 다급히 말했다. 금수저 셋을 잃었으니 이제 이 협조자를 꽉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당신은 강여름을 내내 좋아했잖아요? 이제 강여름은 최하준에게 학을 뗐으니 다시는 둘이 재결합은 하지 못할 거예요. 이건 당신에게 기회라고요. 나에게 감사해야 옳지 않나요?”
백지안이 싸늘하게 웃었다.
수화기 건너편의 사람이 나지막이 웃었다.
“백지안 씨, 난 이미 당신을 두 번이나 도와줬습니다. 앞으로 더는 도와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에게 뭔가 새로운 이용가치가 있기 전에는. 이번 사건의 내막이 알려지면 당신은 송영식과도 결혼하지는 못할 겁니다. 게다가 하잘 것 없는 인간 하나 실종시키는 건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곧 삐릭 하고 전화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지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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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어느 고급 아파트, 양유진이 휴대 전화를 들고 전면 창 앞에 서 있었다. 유리에 늘씬한 양유진의 몸이 비치고 있었다. 짙은 남색 잠옷이 그 몸을 감싸고 있었다. 우아한 얼굴에서 흐르는 어둡고 무거운 기운은 낮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곧 휴대전화가 울렸다. 미스터리의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곧 다 됩니다.”
양유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좋군요. 최하준이 너무 오래 날뛰었어요. 이제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지. 기다리겠습니다.”
그 사람은 기분 좋은 듯 말을 이었다.
“요즘 일을 아주 깔끔하게 잘하더군요.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 부드러운 양유진의 눈가에 싸늘한 증오가 어렸다.
‘최하준, 곧 내가 이 손으로 네 놈을 끌어내려 주겠다!’
양유진은 예전에 서신일의 생일잔치에서 사람들이 모두 보는 데서 최하준이 어떻게 자신을 모욕했던지를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 강여름을 얼마나 잔인하게 빼앗아 갔던지는 더욱 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양유진은 몸을 낮추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이제 조만간 국내 최고의 위치를 탈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