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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화

“여름이는 혼외 자식이 아닙니다.” “너랑 쟤 엄마가 결혼을 안 했으니 혼외 자식이지 뭐니? 저런 애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다니 어울리지 않는다. 기어코 쟤를 자식으로 인정하겠다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박재연이 대놓고 협박을 했다. “지금은 아버지가 위급하시니 어머니와 이런 문제로 다투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경주가 씩씩거리더니 돌아서서 나갔다. 너무 화가 나서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아버지, 일단 좀 앉으세요.” 여름이 얼른 서경주를 부축해서 앉혔다. “제가 가서 물이라도 좀 사 올게요.” 서유인이 묘한 말투로 속을 긁었다. “할머니도 이 연세에 아직도 서 계시는데 어지간히 엄살에 맞춰주네. 저러니 큰아버지가 정신 못 차리고 넘어갔지.” 그러더니 박재연을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아유, 역시 누구랑 다르게 네가 눈치가 있지 뭐니.” 박재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여름에 대한 불만이 아주 극으로 치달았다. 서경주는 화가 나서 얼굴부터 목까지 다 빨개졌다. 서신일이 응급실에 있지만 않아도 그대로 집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할머니 할아버지가 절 예뻐라 하지도 않으셨는걸요. 제가 직접 키운 손녀도 아니고요. 저는 애초에 서씨 집안 식구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여름이 서경주를 위로하더니 물을 사러 갔다. ---- VIP 병실. 누군가가 창백하고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에, 영혼이 다 빠져나간 눈,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전의 강하고 날카로운 기운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기댈 곳 하나 없이 황망한 남자였다. 상혁은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뭘 좀 드시죠. 어제 수술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드셨습니다. 평소 아무리 건강하셨어도 계속 이렇게는 버티실 수 없어요.” 하준의 얇은 입술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 한마디 뱉을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지금처럼 아무 말도 안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입을 간수하지 못했을까? 입만 간수 잘했어도 여름이에게 그렇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이때 병실 밖으로 익숙한 모습이 지나갔다. 하준은 그대로 팔에 있는 링거 바늘을 뽑고 뛰어나갔다. 상혁은 깜짝 놀랐다. “피, 피가…. 아니 이제 막 수술을 하셨는데 그렇게 움직이시면 상처가 열립니다.” 하준은 아무 말도 안 들리는 사람처럼 점점 더 빨리 달려 그 가느다란 모습을 따라잡았다. “여름아….” 걸어가던 여름은 갑자기 뒤에서 잡아채는 힘에 몸이 돌아가면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돌아보니 고통스러운 하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복을 입고 있었지만 모델 같은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평소의 강한 남성미를 부드럽게 만들어 마치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형견 같은 느낌이었다. “날 보러 왔어?” 하준이 희망이 가득한 눈으로 여름을 보았다. 말투는 이상하게도 조심스러웠다. “내 병실은 저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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