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화

“드레스 마련해 놨으니까 가서 좀 갈아 입어요.” 송영식은 턱으로 소파에 놓인 검은 드레스를 가리켰다. “제 드레스는 멀쩡한데 왜 갈아 입어야 하죠?” 윤서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당신 드레스가 우리 지안이랑 너무 똑같잖아.” 송영식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지안이는 내 약혼녀니까 이제 회장 사모님인데 직원이랑 비슷한 옷을 입어서야 되겠어?” “……” 윤서는 경악한 나머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뭐래! 아예 내가 같은 여자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그러셔?” 송영식은 윤서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거참 지위가 있는 사람이 말이야 입이 그렇게 거칠어서야.” “아니, R&D 총감으로 모셔올 때는 굽신굽신하고 데려와 좋고는 이제 와서 뭐? 입이 거칠어?” 윤서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디자인도 다른데 왜 백지안이 레드 드레스를 입으면 나도 레드 드레스는 입지도 못하는데요? 자기가 뭐나 되는 줄 아시나 봐? 참나 지금 그 집은 온 집안이 내년에 대통령 선거 준비한다고 다들 어디 가서 눈에 띄는 짓 안하려고 다들 모을 낮추는데 어디서 이런 자손이 나와서 집안을 흐리고 다니나 몰라?” 그러더니 윤서는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송영식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일부러 지안이랑 똑같은 색으로 입은 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오늘 밤에 지안이보다 돋보여서 사람들 앞에서 지안이를 우습게 만들 생각이었잖아? 안 그래도 불쌍한 애를 진짜 너무 괴롭히네. 강여름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이제 그만 좀 하지 그래?” 윤서는 아주 크게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상상력이 그렇게 풍부하면 화장품 회사 CEO가 아니라 작가가 되지 그러셨어요? 내가 백지안 코디야, 뭐야? 그 인간이 뭘 입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처럼 음모가 많은 사람은 당연히 남들은 모르는 무슨 방법이 있겠지.” 송영식이 냉랭하게 뱉었다. “아, 몰라! 어쨌든 난 죽기 전에는 옷 안 갈아입어요.” 윤서는 그대로 걸어 나갔다. “댁이랑 계속 얘기하다가는 바보 옮을 것 같으니까 먼저 갈게요.” “거기 서…” 화가 난 영식은 무의식 중에 손을 뻗어 임윤서의 소매를 잡았다. 일자 어깨인 윤서의 드레스는 영식이 잡아당기고 윤서는 걸어가자 그대로 쭉 벗겨졌다. 너무 와락 벗겨지는 바람에 니플 패치까지 다 떨어져 나갔다. 놀란 송영식은 그대로 멍하니 서서 온몸이 훤히 드러난 윤서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윤서도 드레스를 입을 때 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온몸이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렸는지 송영식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런 양아치 같으니, 보긴 뭘 봐요!” 윤서가 비명을 지르며 가슴을 가렸다. “어디다 대고 욕지거리야?” 송영식은 더욱 눈이 크게 뜨고 버럭했다. “남의 옷을 홀랑 다 벗기는데 욕도 못 해?” 윤서도 얼굴이 새빨개졌다. 부끄러운 건지 화가 난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다 커서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갈아입으랄 때 갈아입었으면 좋잖아?” 송영식이 협박을 했다. “안 갈아입으면 내가 직접 갈아입혀 주지.” “해 보시지!” 윤서가 송영식에게 도리어 한발 성큼 다가섰다. “자신있으면 해보라고. 당장 경찰에 전화해서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야. 일이 커지면 누가 더 부끄러워 지는지 보자고. 어쨌든 난 3년 전에 망신이란 망신은 당할 만큼 당해서 이제 밑질 것도 없어.” “……” 송영식은 움찔움찔 뒷걸음질을 쳤다. 윤서가 바짝 붙어 있어서 시선만 아래로 내리면 그대로 드러난 가슴이 다 보였다. 이제는 아주 호흡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돼, 됐으니까 얼른 옷이나 입고 나가요.” 송영식은 이러다가 미쳐버리겠다 싶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윤서는 송영식을 있는 힘껏 노려보고는 욕실로 들어가 옷을 다시 챙겨 입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곤란한 듯 고개를 쏙 내밀었다. “저기요, 니플 패치 좀 집어 줘요.” 송영식은 펄쩍 뛰었다. 바닥에 떨어진 핑크색 물건을 보면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런 걸 왜 붙여?” ‘이런 걸 나더러 주워달라니, 저기다 어떻게 손을 대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