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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한참을 망설이던 허소원은 결국 아이를 달래듯 입을 뗐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이모가 같이 가줄게. 대신 거기서 안 먹고 포장만 하면 안 될까? 이모가 지금 진짜 좀 급하거든.” 그 말을 듣자 박은성은 눈을 반짝이며 꼭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좋아요! 이모가 드시기만 하면 돼요.” 허소원은 그 반짝이는 눈빛에 가은이가 떠올랐다. 잠에서 깬 딸이 눈을 비비며 웃던 모습이 지금 이 아이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따뜻해졌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 허소원은 집 안으로 들어가 가방과 마스크를 챙기고 아이를 따라 1호 빌라로 향했다. 박태진은 거실 통창 앞에 서 있었다. 아침 햇살이 그의 실루엣을 황금빛으로 감싸 안아 순간 눈이 부실 만큼 빛났다. 허소원은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침부터 혼자 분위기 잡기는... 혹시 바깥 고양이라도 유혹하려는 건가.’ 아이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안으로 이끌며 신나게 외쳤다. “아빠, 예쁜 이모 왔어요.”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엔 들뜬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태진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들어와요.” 하지만 허소원은 문 앞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급한 회의가 있어서요. 아침은 괜찮아요.” 그녀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챈 박태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은성이가 오늘 아침을 준비하려고 어젯밤부터 메뉴를 고르는 데 한참을 걸렸어요. 아침엔 해 뜨기 전부터 주방에 있었고요.” 허소원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며 놀란 듯 물었다. “진짜야?” ‘밥 한 끼 먹이려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썼다고?’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이 가슴 깊숙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이는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모. 일 해야 하잖아요. 금방 집사 할아버지한테 포장해달라고 할게요.” 그러곤 재빠르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허소원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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