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6화

예전 같으면 진이서는 이런 말을 듣고 매우 난처해하며 괴로워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토론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몸이 피곤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옆에 있는 이준서에게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떠들썩한 경매장을 떠났다. 복도로 나와 코너를 도는데 강예슬이 바짝 쫓아왔다. “진이서 씨.” 강예슬이 진이서를 막아서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기 좀 할까요? 나 준서 진심으로 사랑해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 데 마음이 잘 정리가 안 되네요... 우리 두 사람 허락해 주면 안 돼요? 제발요.” 진이서는 너무 피곤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두 사람이 진심이든 아니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여기서 쇼하는 거 맞춰줄 시간도 없고요.” 진이서가 강예슬을 지나치려는데 후자는 강한 자극이라도 받은 듯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진이서의 치맛자락을 부여잡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러더니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진이서 씨. 내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먼저 준서 좋아했어요. 욕해도 좋고 때려도 좋은데 준서 옆에만 있게 해줘요. 나는 준서 없이는 못 살아요.” 진이서는 갑작스러운 강예슬의 행동에 넋을 잃는데 누군가 있는 힘껏 진이서를 밀쳐냈다. 쾅.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부딪치자 극심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져 이마를 부여잡는데 귓가에 이준서의 분노에 찬 호통이 들렸다. “진이서. 너 또 예슬에게 무슨 짓한 거야?” 고개를 들어보니 이준서가 미간을 찌푸린 채 보물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게 바닥에 꿇어앉은 강예슬을 부축해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더니 쓰레기 보듯 역겨움과 분노가 가득 찬 눈빛으로 진이서를 바라봤다.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새를 못 참고 괴롭힌 거야? 진이서. 왜 그렇게 독해?” 이준서의 목소리는 아무런 온기가 없었고 말투에서는 날카로운 조롱과 질책이 느껴졌다.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예슬을 괴롭히면 절대 용서 못 해.” 그러더니 피가 철철 흐르는 진이서의 이마는 보지도 않고 울먹이는 강예슬을 안은 채 자리를 떠났다. 진이서는 이마에서 전해지는 고통을 참으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부릅뜨고 있는데 도발로 가득 찬 강예슬의 눈과 딱 마주쳤다. 순간 너무 황당해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꼬리를 올렸지만 이마가 지끈거려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 강예슬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깔끔히 물러날 텐데 그때가 되면 이준서가 누구를 만나든 진이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 ... 며칠이 더 지나고 이준서와 진이서의 결혼 5주기가 되었다. 기념일이라 해서 무시당하는 처지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진이서는 올해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해 외출 준비를 하는데 이준서가 보기 드물게 치장하는 게 보였다. 핏이 좋은 슈트에 잘 정돈된 머리를 하고는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한 진이서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사로잡힐 뻔했다. ‘설마 나를 기다리는 건가?’ 다만 그 망상은 얼마 못 가서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공주처럼 예쁘게 치장한 강예슬이 위층에서 달려 내려와 이준서의 팔짱을 꼈다. “준서야. 나 준비 끝. 가자.” 차갑기만 하던 이준서의 옆모습은 강예슬을 본 순간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