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갑작스러운 출현

박수혁의 말에 서민영은 그녀를 버리지 말라며 애처롭게 애원했지만 박수혁은 뜨겁게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번 사건과 더불어 이혼 당일 다쳤다고 서민영이 거짓말을 한 일까지 떠오르며 3년간 몇 번이나 저 여자한테 놀아난 건지 혼란스러웠다.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그때, 멋진 스포츠카가 도로에 멈춰 서더니 누군가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 “형, 타.” 강서진은 오랫동안 박수혁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실 그도 오늘 파티에 참석해야 했지만 방금 전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박수혁이 파티장을 뜨고 괜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핑계를 대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도로에서 만날 줄이야. 조수석에 탄 박수혁은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물던 소은정의 모습이 떠오르며 살짝 멈칫했다. “형? 오늘 소은정 봤지? 소은호랑은 무슨 사이래?” 강서진의 질문에 박수혁은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한 질문은 박수혁이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이었으니까. 다행히 기자들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파티라 다행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지만 태한 그룹의 입지가 있는 이상, 다들 함부로 떠벌리지는 못할 것이다. “솔직히 소은정 정도 되는 여자가 형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민영 누나가 또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형, 이혼 잘했어. 그런 여자랑 계속 살았으면 형 가족이 그런 꼴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여자도 참 대단해? 그 사이에 소은호는 어떻게 꼬신 거지? 비결이 뭘까? 반반한 얼굴?” 박수혁은 얼굴, 몸매, 재력, 집안까지 빠지는 게 없는 최고의 남자, 그와 한번 만나보고 싶은 재벌집 영애들은 셀래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강서진도 소은정이 박수혁의 돈만 보고 결혼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강서진의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 “됐어. 그만해.” 박수혁이 차갑게 말했다. 박수혁의 단호한 태도에 강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어차피 두 사람은 이제 이혼한 사이, 그저 다시 박수혁을 귀찮게 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박수혁은 아무 말도 없이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술 한잔할래?” 강서진이 물었다. “...그래.” 한참을 침묵하던 박수혁이 대답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의 이성을 흔드는 이 짜증과 불쾌함을 씻어내고 싶었다. ...... 파티에서 보여준 화려한 퍼포먼스 덕분에 소은정은 사교계에서 가장 핫한 샐럽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소은호는 소은정을 SC 그룹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파티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친밀한 스킨십과 갑작스러운 인사 임명에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다들 수군댔지만 두 사람은 그저 웃어넘길 뿐 딱히 해명하지 않았다. 소은정이 그룹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바로 신분을 밝히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낙하산 본부장에 대해 회사 직원들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소은호의 결정에 대놓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소은호는 자신이 가장 믿는 부하를 소은정의 개인 비서로 임명했고 바쁜 와중에도 2시간씩 시간을 내 소은호의 사무실에서 경영학에 대한 개인 교습을 박곤 했다. 회장 의자에 앉아 여유를 부리는 소은정을 보던 소은호가 장난스레 물었다. “너 열심히 안 할래? 아빠한테 이른다?” 소은정은 바로 자세를 고쳐잡더니 다급하게 대답했다. “싫어!” “며칠 뒤면 거성그룹의 설립 기념일이야. 거성그룹 회장이 요즘 꽤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네가 한 번 해볼래?” 드디어 실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두 눈을 반짝였다. “좋아. 그 프로젝트 내가 무조건 따낼게!” “아마 쉽지는 않을 거야. 경쟁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게다가 난 해외 출장이 있어서 널 서포트 해주지도 못할 거고. 아, 은해가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도와달라고 해보든가.” “은해 오빠가 온다고? 내가 직접 공항으로 나갈 거야.” 소은정이 소은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아마 스크린 속 드라마 남주인공으로 나오는 모습이었으니 한시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었다. 아직도 소녀같이 떼를 쓰는 여동생의 모습에 소은호는 피식 웃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레스토랑에 들어선 순간, 이민혜와 박예리를 발견한 소은정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매니저 어디 있어? 여기 레스토랑 손님 관리 제대로 안 할 거야?” 박예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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