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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 알록달록한 그림은 마치 가족사진 같았다. 남자와 여자가 아이 한 명의 손을 잡고 있었다. 온나연은 남자와 아이가 여경민과 여희수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여자에 이르자 그녀는 조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치대로라면 여희수는 온나연을 그렸을 테지만, 그림 속 그 여자는 그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일 때문에 일부러 단발을 유지하지만, 그림 속 여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또 이를테면, 그녀의 얼굴형은 단정한 원형에 가깝지만 그림 속 여자는 과장된 뾰족한 V라인이었다. 왜인지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온나연의 가슴이 불편해졌다. 마치 자신이 이 세 식구 사이에서 외부인이 된 듯했다. ‘어쩌면 희수 나름의 생각이 있는 걸 수도 있지.’ 온나연은 속으로 불편함을 누르고 그림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내일 아이가 깨어나면 제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갑자기 울려 생각이 끊겼다. 온나연이 문을 열었다. 뜻밖이었다. “어머님,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일부러 네가 돌아오길 기다렸지!” 허미경은 여경민의 어머니로, 단정한 치마를 입고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린 전형적인 상류층 부인이다. 온화하고 단정한 가운데서도 기세가 있다. “내 목 디스크가 또 도졌어. 네가 좀 눌러줘. 너는 맨날 야근하니 잡아두기가 쉽지 않네!” 온나연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사과하고, 허미경을 의자에 앉힌 뒤 손끝으로 어깨와 목을 짚어 익숙하게 눌렀다. 여경민과 결혼한 뒤 여러 해 동안에도 허미경은 보통의 재벌가 시어머니들처럼 깐깐하고 모질지 않았다. 온나연과 허미경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 모녀는 아니지만 모녀 이상이었다. 여경민이 막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을 때, 허미경은 때리고 욕하기도 했고, 심지어 호적에서 파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경민은 고질을 고치지 못했고, 허미경도 어쩌지 못했다. 그래서 온나연에게 마음 넓게 가지고 눈 한번 감아 넘기라고 권할 수밖에 없었다. “아, 시원하다. 역시 너밖에 없네!” 허미경은 눈을 감고 온나연의 알맞은 압에 몸을 맡기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물었다. “너 양수민 알아?” “네.” 온나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여자애 만만하지 않아.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이 이번에는 진짜 마음이 갔어. 회사에까지 들여보내다니!” 그 말을 할 때 허미경은 이를 거의 갈았다. 온나연은 눈빛이 차분했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얼굴이 예쁘장하더라고요. 시대 엔터에서 눈이 간 것도 이상하지 않죠.” 그녀는 양수민을 따로 알아본 적은 없었다. 다만 막 고개를 내민 신인이라는 것, 로맨스 사극 한 편으로 반짝 떴고, 청순한 이미지로 라인을 타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YS 그룹의 사업은 많았고 엔터도 그중 하나였다. YS 그룹 산하 시대 엔터는 연예계 손꼽히는 매니지먼트사로, 들어가는 연예인은 톱 중의 톱이었다. 그래서 양수민 같은 신인이 들어갔다는 건 틀림없이 여경민이라는 큰손이 뒤를 봐준 덕이었다. “너도 정신 좀 차려!” 허미경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여경민한테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돼. 머지않아 그 여우 같은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오겠어! 내 생각에 네 일은 그만두는 게 낫겠어. 여자가 무슨 법의학을 하니. 맨날 시체랑 부딪히는데 어느 남자가 견디겠어? 여씨 가문에 제일 부족하지 않은 게 돈이야!” 허미경은 온나연이 아주 만족스러운데 딱 일 하나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밖에서 말하기 체면이 떨어지고, 가정과 아이를 돌보기에도 맞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저는 제 일이 꽤 좋아요.” 온나연은 부드럽게 허미경의 어깨를 주무르면서도 말투만은 단단했다. “시체를 상대하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쉬워요.” “너는 참 고집이 너무 세!” 허미경은 온나연이 남 말대로 움직일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체념 섞인 한숨을 쉬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일이 너희 결혼 7주년이지. 내가 운진각에 방 하나 잡아뒀어. 그놈도 내 체면 봐서 분명 올 거다. 기회를 잘 잡아.” 그녀는 온나연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포개며 안쓰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희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 온나연은 살짝 멍해졌다. 그렇다, 7년. 그녀와 여경민은 벌써 결혼한 지 7년이나 되었다. 부부라면 누구나 이쯤에서 귄태기를 겪는다고들 한다. 버텨내면 백발까지 함께 가고, 못 버티면 갈라서게 된다. 물론 백발까지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희수를 위해 그녀는 여경민과 갈라서고 싶지 않았다. “좋아요, 정시에 갈게요!” 온나연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이 결혼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온나연은 일부러 일찍 퇴근했고 이례적으로 한껏 꾸민 뒤 운진각으로 곧장 향했다. 허미경은 여희수를 데리고 이미 방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어머님. 제가 늦었죠!” 온나연은 문을 밀고 들어가 먼저 허미경에게 인사한 뒤 두 팔을 벌리고 딸을 다정히 바라봤다. “희수야, 엄마 보고 싶었지? 얼른 엄마한테 안겨야지.” 평소와 달리 여희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조금 짜증스럽게 말했다. “엄마, 방해하지 말아요.” 온나연이 벌린 팔은 공중에서 굳어버렸다. 민망하고 서운했다. 기억 속에서 딸이 이렇게 냉담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요즘 실험실이 너무 바빴다. 일상 부검 업무에 학술 보고까지 겹쳐 밤낮이 바뀐 야근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집을 나설 때면 여희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퇴근할 때쯤이면 이미 잠들어 있었다. 꼬마가 화가 날 만했다. “여희수, 엄마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허미경이 얼굴을 굳히고 당장이라도 꾸짖으려 하자, 온나연은 황급히 손짓해 말리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여희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알았다. 꼬마는 온 정신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하필 그 그림이 어젯밤 그녀가 봤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희수야, 너 착각한 거 아니야? 엄마는 단발이잖아.” 온나연은 그림 속 여자를 가리키며 참지 못하고 바로잡았다. “이건 엄마가 아니에요!” 여희수는 온나연을 흘끗 쳐다보더니 도자기처럼 하얀 얼굴에 싫증 난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이만큼 예쁘지도 않아요!” 온나연의 가슴이 또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어젯밤의 그 불편한 감정이 다시 밀려와 답답하고 쓰렸다. 그녀가 세상 누구보다 아끼는 딸, 쓰디쓴 삶에서 유일한 단맛. 그런데 그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의 여주인은 자신이 아니었다. “희수야, 엄마한테 화났지?” 온나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딸의 고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요즘 정말 너무 바빠서 너랑 놀 시간이 없었어...” “엄마, 희수 얼굴 만지지 말아요!” 여희수는 온나연의 손을 밀쳐내고 멀찍이 물러섰다. 작은 손으로 코를 집으며 구역질하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 손은 맨날 시체 만지잖아요. 더럽고 냄새나요!” “여희수, 누가 그런 말 가르쳤어?” 자기 외손녀가 이렇게 버릇없이 구는 걸 허미경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미경은 온나연을 대신해 표정이 서늘해지며 날 선 어조로 다그쳤다. “근데 이 그림 속 여우 같은 여자는 누구야?” “우와앙!” 여희수는 입술을 찡그리고는 그만 질겁해 울음을 터뜨렸다. 온나연은 멍하니 서 있을 뿐 달래러 가지도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그녀의 보물 같은 여희수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여경민 씨, 이쪽으로 오세요.” 그때, 방 문이 종업원에 의해 열렸다. 여경민은 준수한 얼굴을 굳힌 채 싸늘한 기운을 두르고 무표정하게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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