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박하준은 잠시 멍해졌다가 진서연을 떠올렸다.
“서연아, 너...”
“안 죽어요.”
진서연이 비웃었다.
곧이어 박하준의 시선이 그녀의 붉게 부어오른 팔로 향하더니 얼굴색이 변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다쳤어?”
“미안해요.”
진하나가 황금히 입을 열었다.
“언니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하준이 말했다.
“됐어. 너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네 언니는 너한테 따지지는 않을 거야. 사과할 필요 없어.”
짝!
진서연이 갑자기 손을 들어 힘껏 뺨을 때리고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미안해. 나도 실수로 때렸어.”
그녀는 엄청난 힘을 사용했기에 진하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박하준은 안타까움에 눈가가 붉어졌다.
“하나가 사과하는데 왜 때리는 거야?”
진서연은 조롱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실수라고 분명히 말했고, 이미 사과도 했잖아요. 왜 계속 꼬투리를 잡는 거예요?”
박하준은 어이가 없어 웃어 버렸다.
“내가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명백히 네가 일부러 때린 거잖아!”
진서연이 따져 물었다.
“그럼 진하나가 일부러 그랬다는 건 왜 눈치채지 못하는 건데요?”
그 말에 진하나는 재빨리 설명했다.
“언니,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언니 화가 안 풀리면 한 번 더 때려.”
그녀는 말한 후 가련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박하준을 바라보았다.
진서연은 눈썹을 추어올렸다.
박하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
이전보다 더 큰 힘에 진하나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박하준의 분노 어린 고함을 무시하고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진서연은 혼자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진하나와 박하준은 없었다.
그들이 병원에 갔다고 하는 가정부의 말에 진서연은 냉소했다.
고작 두 번의뺨 때린 거로 병원에 가다니.
이미 붓기마저 가라앉았을 텐데 병원에 간 것인지, 아니면 데이트를 즐기러 간 것인지 그들만이 알 것이다.
박하준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반쯤 잠이 든 진서연은 옆 침대가 푹 꺼지는 것을 느꼈다.
박하준은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고 귓불을 물며 뜨거운 손을 잠옷 아래로 집어넣었다.
진서연은 그의 손을 잡아 힘껏 뿌리쳤다.
박하준의 몸이 굳었다.
그녀가 자신을 거부한 것은 처음이었다.
“왜 그래?”
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진서연은 둘 사이의 거리를 벌리고 아무 말 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감히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묻다니.’
곧 박하준은 알아차렸다.
“아직도 화났어?”
진서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되물었다.
“전 화나면 안 되나요?”
박하준은 몇 초간 침묵했다.
“하나가 너를 다치게 했지만 너도 두 번이나 때렸잖아. 더 뭘 원하는데?”
진서연은 그와 말싸움할 기력이 없었다.
“말 다 했어요? 다 했으면 나가서 자요. 제가 자는 걸 방해하지 말고요.”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녀는 박하준이 이를 악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알았어 서연아, 다 내 잘못이야. 내가 하나부터 챙기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난 단지 하나가 다치면 장인 어르신이 너를 탓할까 봐...”
진서연은 냉소했다.
“정말요? 정말 자상하네요.”
그녀는 연기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아 그에게 등을 돌렸다.
박하준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리더니 두 눈에 사과의 뜻을 가득 담고 말했다.
“미안해 서연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장 먼저 너를 걱정하겠다고 약속할게.”
진서연은 10년간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장육부가 다 아픈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굳게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거대한 상실감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는 손을 꽉 말아 쥐며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박하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나한테 화만 내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줄게. 집, 차, 보석 뭐든지 골라...”
진서연은 거절하려다 문득 뭔가 떠올랐다.
“정말요?”
“당연하지.”
“좋아요.”
진서연은 서랍을 열어 이혼 합의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서명해요.”
박하준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 몰랐던 진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을 본 박하준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는 손을 뻗어 서랍을 열었다.
“뭘 샀길래 그렇게 신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