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박태윤은 마치 황야에 버려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박태윤은 눈앞에서 문서아가 유상우와 팔짱을 낀 채 돌아서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문서아의 약지에서 번뜩이는 반지가 박태윤의 눈을 찔렀다. 주변에서 억눌린 수군거림과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푸!”
피가 한꺼번에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박태윤은 그대로 바닥에 토해 냈다. 번들거리는 바닥 위로 붉은 선혈이 퍼졌다.
시야가 까맣게 꺼졌다.
박태윤은 끝내 의식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들린 건 사람들의 놀란 비명과, 어지럽게 몰려드는 발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문서아의 등. 단호하게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의식이 끊어지기 전 박태윤에게 남은 가장 잔인한 장면이 됐다.
박태윤은 파리 전시장에서 피를 토한 후 쓰러져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진단은 극심한 충격과 감정적 과부하, 그리고 아직 아물지 않은 부상 악화였다. 잠시 안정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박태윤은 병실에서 딱 하루만 지냈다.
손등에 꽂힌 주사 바늘을 뽑아 던지고,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병원을 나왔다.
머릿속엔 단 하나뿐이었다.
‘서아를 찾아야 해.’
문서아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상우가 대체 뭔데. 지난 1년, 서아가 나한테 보여 준 다정함과 부드러움, 그 모든 게 정교하게 짜인 함정이었단 말이야? 오로지 날 무너뜨리기 위한 복수였어?’
‘아니야.’
박태윤은 끝내 믿지 않았다.
‘서아는 날 시험하는 거야. 날 화나게 하려는 거야.’
박태윤은 직접 묻고 싶었고 문서아의 입에서 그 답을 확인해야 했다.
박태윤은 넋이 빠진 사람처럼 호텔로 뛰어 들어갔다.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구겨진 셔츠와 재킷을 아무렇게나 걸쳤다.
넥타이는 비뚤어졌고 머리는 헝클어졌다. 눈 밑은 새까맣게 꺼져 있었고 턱에는 거친 수염이 돋아 있었다.미쳐 가는 사람의 몰골이었다.
박태윤은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빠른 항공편을 끊었다.
레이캬비크행.
비행기 안에서 박태윤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열몇 시간 내내 물 한 모금도 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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