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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전화를 끊자 문서아는 힘이 풀린 듯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바닥으로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문서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일어섰다. 문서아는 가장 친한 친구 몇 명에게 연락해 밖으로 불러냈다. 쇼핑으로 매장을 쓸어 담고, 피부 관리도 받고, 마지막에는 남성시에서 제일 핫하다는 미궁 클럽으로 곧장 향했다. 친구가 문서아의 옆얼굴을 힐끗 보다가 결국 걱정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서아야, 박씨 가문 가법 그렇게 빡센데 너 한동안 밖에도 못 나왔잖아. 오늘 이렇게 놀았다가 들키면...” 문서아는 잔에 든 독한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목을 태우는 매운 열기가 내려가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은 더 타들어 갈 뿐이었다. 문서아는 춤추는 사람들로 흔들리는 무대를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폭탄 발언을 했다. “괜찮아. 난 박태윤이랑 이혼할 거니까.” “뭐라고?” 친구는 너무 놀라서 잔을 엎을 뻔했다. “넌 박태윤을 제일 좋아했잖아. 처음에 박태윤 잡으려고 얼마나...” “이제 안 좋아해.” 문서아가 말을 끊었다. “앞으로도 절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클럽을 뒤흔들던 음악이 뚝 끊기고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줄지어 들어오더니 훈련된 듯 빠르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손님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관계없는 사람은 지금 당장 나가 주세요!” 손님들은 투덜거리며 끌려가듯 밖으로 나갔다. 문서아와 함께 있던 친구들도 경호원들에게 정중하게 안내받아 밖으로 나갔다. 클럽 안이 한순간에 텅 비었다. 숨소리조차 사라진 공간에 박씨 가문의 이만성 집사가 다가왔다. 이만성 집사는 허리를 살짝 숙였지만 말투에는 전혀 여지가 없었다. “사모님, 어르신께서 모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문서아는 소파에 느슨하게 기대앉아 잔을 흔들었다. 눈꺼풀조차 귀찮다는 듯 들지 않았다. “안 가요. 어머님한테 전해요. 저랑 박태윤은 곧 남남이 될 거예요. 박씨 가문 가법은 이제 저한테 못 써요.” 이만성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손을 한 번 들었다. 경호원 한 명이 소리도 없이 다가오더니, 손날이 정확하게 문서아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러자 시야가 툭 꺼지듯 까매졌다. 문서아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문서아는 두 손이 뒤로 결박된 채로 박씨 가문 본가의 숨 막히는 거실에 무릎 꿇려 있었다. 임정숙은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어두운 자줏빛 치마를 차려입고 머리칼 한 올 흐트러짐도 없이 올려 묶은 모습, 날카롭게 쏘는 눈빛은 정말 매서웠다. 임정숙의 목소리가 날을 세웠다. “문서아, 대체 어디까지 막 나갈 셈이니?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배가 그렇게 조용하더니, 시험관 시술 검사 받으라니까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병원까지 난장판을 냈어? 그런데 이제는 그런 천박한 곳까지 기어가서 놀아나고 있어? 문씨 가문 장녀 맞니? 그 정도 예절도 없어? 조가희처럼 집안 약한 애보다도 못하니?” 문서아는 임정숙이 문서아를 조가희와 비교하는 말을 들으며, 가슴속 어딘가가 찢기듯 쓰렸다. ‘박태윤이 원한 게 이거였구나.’ 정식 아내인 문서아를 세워 두고, 조가희가 얌전하고 착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배경으로 쓰는 것이었다. 문서아는 정말 우스웠다. 남성시에서 가장 눈부시고 제멋대로 피어 있던 장미가, 박태윤의 마음속에서는 조가희 하나보다 못했다. 조가희를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문서아를 짓밟는 남자였다. 문서아는 목 끝까지 올라온 울컥함을 억눌러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박태윤은 어디 있어요. 만나야겠어요.” 임정숙이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태윤은 바빠. 널 만날 시간 없어! 너는 태윤이 평소에 너한테 너무 관대하니까 이렇게 날뛰는 거야. 태윤은 박씨 가문에서 제일 뛰어난 후계자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매일 사고만 치고, 일을 방해하고, 넌 대체 언제 태윤의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봤니?” ‘박태윤 생각?’ 문서아는 속으로 비웃었다. 문서아가 그동안 박태윤이 가문과 문서아 사이에서 곤란해질까 봐 본성까지 눌러가며 가법을 배웠고 박씨 가문의 며느리 노릇을 하려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문서아만 더 우스운 사람이 됐다. 이제는 박태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구도 문서아를 묶어 둘 자격이 없었다. “태윤이를 만나야겠어요.” 문서아가 다시 말하며 일어서려 하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문서아 어깨를 세게 눌러 다시 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임정숙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게 어디라도 건방을 떠는 거야. 당장 끌어내서 사당에 무릎 꿇려! 잘못을 뼈저리게 알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게 해!” “싫어요!” 문서아는 결박된 몸으로 버둥거리며, 다가오는 도우미들을 몸으로 밀쳐 냈다. 손이 묶여도 발로 차고, 어깨로 들이받고, 잡히는 대로 부딪치며 뭐든 쓰러뜨렸다. 도자기가 깨지는 소리, 가구가 넘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임정숙은 바닥에 널린 난장판을 보다가, 특히 아끼던 오래된 도자기 꽃병이 넘어져 산산조각 난 걸 보자 온몸이 떨릴 만큼 분노했다. “이런 망나니 같은 짓을 어디까지 갈 셈이니!” 임정숙이 이를 악물었다. “좋아. 말로 안 되면 방법은 하나야. 끌고 가서 벌을 집행해. 병원에 가서 시험관 시술까지 얌전히 하겠다고 할 때까지 때려!” 문서아는 덩치 큰 남자들에게 거칠게 끌려, 본가의 외딴 별채로 끌려갔다. 두꺼운 채찍이 등과 무릎 뒤쪽으로 내려 찍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살갗이 불에 덴 듯 뜨겁게 타올랐고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졌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 옷을 흠뻑 적셨다. 문서아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문서아는 마치 굴복을 모르는 짐승처럼 눈빛만은 끝까지 꺾이지 않았다. 그러다 버틸 수 있는 선을 넘는 통증이 밀려오자, 시야가 다시 꺼지듯 어두워졌다. 문서아는 그대로 기절했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문서아 코끝을 찌른 건 소독약 냄새였다. 문서아는 병상에 엎드린 채였다. 등 쪽의 상처는 처치를 받은 듯했지만, 둔한 통증이 계속 욱신거렸다. 병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문밖에서 박태윤과 조가희의 낮은 대화가 들려왔다. “아주버님, 이번에는 정말 고마워요.” 조가희 목소리에는 고마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불상 깨진 일로 저한테 화내지 않게 하려고 서아 언니한테 그렇게까지... 서아 언니 성격은 아주버님도 알잖아요. 서아 언니가 깨어나면... 반드시 저 원망하지 않을까요?” 박태윤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차갑게 정돈돼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너한테 손대지 못해.” 박태윤이 잠깐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 “문서아의 성격이 거칠긴 해도,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야. 그동안 박수찬이가 문제였지. 장난처럼 살았고 너만 계속 상처 받았어. 큰형인 내가 동생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책임이 있으니... 네 남은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해.” 조가희는 그 말에 마음 깊은 곳이 건드려진 듯, 참아왔던 울음을 끝내 터뜨렸다. 흐느끼는 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늘 무표정하던 박태윤 눈빛에 처음으로 뚜렷한 아픔이 스쳤다. 박태윤은 주머니에서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게 다려진 회색 손수건을 꺼내 조가희에게 내밀었다. “울지 마.” 박태윤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고 문서아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박씨 가문에서 또 힘든 일 생기면 바로 나한테 와. 내가 널 지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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