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병실 안에서 문서아는 문틈 사이로 바깥을 지켜봤다.
문밖에서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달아오른 칼날처럼 가슴에 꽂혀, 살을 헤집고 들어왔다.
문서아는 더는 못 참았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유리컵을 낚아채, 온 힘을 실어 문 쪽으로 내던졌다.
쾅!
유리컵이 문틀에 부딪히며 산산이 깨졌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병실을 갈랐다.
문밖에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안을 바라봤다.
박태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에는 여전히 큰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 전 문밖에서 다정하게 말하던 박태윤과는 많이 달랐다.
“깼어? 몸은 어때?”
그때 조가희도 따라 들어왔다. 손에는 보온통이 들려 있었다.
눈가에는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시선은 겁에 질린 듯 조심스러웠다. 조가희는 애써 비위를 맞추듯 문서아를 보며 말을 꺼냈다.
“서아 언니,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다쳤다길래, 몸보신하시라고... 비둘기탕 조금 끓여 왔어요...”
문서아는 조가희의 얼굴도 보기조차 싫었다. 당장 내쫓고 싶었다.
그런데 시선이 보온병에 닿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비둘기... 어디서 구했어?”
문서아 목소리가 떨렸다.
조가희는 잠깐 멈칫하더니,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서아 언니 다쳤다니까 뭘 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시장은 이미 문 닫아서 신선한 걸 못 구했어요. 마침 뒤뜰에 한 마리 키우는 게 있더라고요. 너무 예쁘길래... 그래서 사람 시켜 잡아다가 끓였어요.”
‘뒤뜰에서 키우는 한 마리라...’
그건 문서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 준 마지막 생일 선물이었다.
문서아가 십 년을 키웠고, 수없이 긴 밤을 함께 버텨 준 반려 비둘기였다.
문서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겼다.
“조가희.”
문서아가 이를 악물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등 상처가 찢어지는 듯 아파왔지만 문서아는 멈추지 않았다.
문서아의 눈빛이 칼날처럼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게 내가 키우던 비둘기인 줄 몰랐어?”
조가희는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지고 금방이라도 울 듯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저 진짜 몰랐어요... 서아 언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언니한테 잘해 보려고...”
“그만해.”
박태윤이 한 발 앞으로 나서더니 조가희를 자기 몸 뒤로 감췄다. 박태윤은 문서아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못마땅함이 묻어 있었다.
“서아야, 비둘기 한 마리일 뿐이야. 가희도 좋은 마음에서 한 거고... 네가 싫으면 그만두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
‘비둘기 한 마리뿐이라고?’
문서아는 박태윤이 아무 망설임 없이 조가희를 감싸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박태윤의 입에서 나온 그 가벼운 말이, 가슴 한가운데를 짓이겼다.
그 순간, 문서아는 숨이 막혀 왔다.
박태윤의 눈에는 조가희의 좋은 마음과 눈물만 보였다.
문서아가 잃은 것, 문서아가 느끼는 상실감과 분노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했다.
“박태윤.”
문서아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절망이 핏빛처럼 묻어났다.
“그 비둘기는 그냥 비둘기가 아니야. 엄마가 남겨 준 거였어. 십 년을 나랑 같이 있었어. 나한테는... 너희보다도 더 소중했어.”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며, 문서아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침대 옆에 놓인, 김이 아직도 오르는 탕 그릇을 낚아채 박태윤 쪽으로 내던졌다.
“아악!”
박태윤 뒤에 있던 조가희가 비명을 질렀다.
조가희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박태윤 앞을 가로막았다.
뜨거운 국물이 조가희의 머리부터 어깨까지 그대로 쏟아졌다.
“가희야!”
박태윤은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박태윤은 신음하는 조가희를 붙잡았고,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문서아, 미쳤어!”
병실 안이 아수라장이 됐다.
박태윤은 곧바로 정태식 원장을 불렀다.
정태식은 상태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무거워진 채 박태윤에게 말했다.
“박 대표님, 화상 부위가 꽤 넓습니다. 깊이도... 이 정도면 흉터가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흉터요?”
조가희는 그 말에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공포와 절망이 섞인 목소리가 떨렸다.
“안 돼요... 흉터 남는 건 싫어요. 아주버님, 어떡해요...”
정태식이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흉터를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면 현재로서는 피부 이식이 가장 확실합니다. 그런데 단기간에 적합하고 상태 좋은 이식 피부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가희의 울음이 잠깐 멎었다.
조가희는 무의식적으로 병상 쪽을,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는 문서아를 슬쩍 바라봤다.
박태윤도 그 시선을 따라 문서아를 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박태윤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문서아 걸로 해요.”
박태윤은 담담하게, 마치 결재하듯 덧붙였다.
“화상은 네가 만들었어. 그러니 네가 책임지는 게 맞지. 그냥 피부 조금 떼는 거니 큰 문제 없을 거야. 서아가 예민하고 아픈 거 싫어하는 거 알아. 나중에 보상할게.”
‘보상?’
문서아는 온몸이 떨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기가 쏟아져 내렸다.
이런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너무 잔인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꺼져.”
문서아가 문 쪽을 가리켰다. 분노와 통증이 뒤엉켜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
“다 꺼져. 조가희한테 피부 떼어 주라고?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 안 돼.”
박태윤은 미간을 더 깊게 찌푸렸다.
“서아, 떼쓰지 마.”
“내가 떼를 쓴다고?”
문서아는 웃는 것도 아닌,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박태윤을 봤다. 쏟아지는 눈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박태윤, 내가 느끼는 감정이랑 고통은... 너한테 아무 의미도 없어? 나한테 소중한 건 뭐든, 필요하면 언제든 희생해도 되는 거야?”
문서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너희들이 안 나가면... 내가 나갈게.”
그 순간, 박태윤이 문서아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만해.”
박태윤 눈빛은 차갑고, 완강하고, 일방적이었다.
“원장님, 진정제 준비해요.”
“박태윤, 네가... 감히!”
문서아는 공포에 질려 발버둥 쳤다. 비명을 질렀지만 박태윤의 힘을 이길 수 없었다.
문서아의 예쁘던 눈동자에는 이제 절망과 깊은 증오만 남아 있었다.
박태윤은 그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이유도 모르게 심장이 날카롭게 저렸다.
낯선 불안이 스쳐 지나가자 박태윤은 거의 반사적으로 다른 손을 들어 문서아의 눈을 가렸다.
마치 문서아의 눈에 담긴 고통과 증오를 그저 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박태윤은 목소리가 낮아졌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채, 달래는 기색이 얹혔다.
“서아야,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날 거야.”
차가운 바늘이 살을 파고들었다.
문서아가 마지막으로 느낀 건, 시야를 덮는 새까만 어둠과 끝없이 밀려오는 얼음 같은 절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