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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박태윤은 허공을 쥔 손을 내려다보다가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곧장 문서아를 뒤따라갔다. “서아야.” 박태윤이 차 옆에서 문서아를 따라잡아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만해. 오늘은 우리 결혼 3주년이야. 본가에서 연회도 준비됐고, 손님도 불러 놨어. 나랑 들어가.” ‘결혼기념일...’ 문서아는 어이가 없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서진 표정이었다. ‘지옥에서 끄집어내 놓고, 이제 와서 결혼기념일 연회에 참석하라고?’ 박태윤은 문서아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문서아를 거의 떠밀다시피 차에 태웠다. 박씨 가문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집 안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샹들리에가 번쩍였고,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물 전달 순서가 되자 박태윤은 손님들 앞에서 문서아에게 값비싼 보석 세트를 여러 벌 내밀었다. 순식간에 탄성이 터졌다. “박 대표님은 사모님한테 정말 지극하시네요.” “저렇게 차가운 분이 결국은 아내 앞에서 무너지네요.” “문서아 씨는 집안도 탄탄하고 외모도 독보적이잖아. 성격이 조금 세도 그게 또 매력이지. 반면 조가희는 집안도 평범한데 남편도 제멋대로고... 어디 비교가 되겠어.” 사방에서 흘러드는 말들이 귀를 찔렀지만 문서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마치 남 얘기인 듯,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조가희는 그 비교가 들리자 얼굴이 굳었다. 이를 악문 채 문서아를 노려보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문서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서빙 직원이 실수로 와인을 문서아의 드레스 자락에 쏟았다. 문서아는 옷을 갈아입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려는 순간, 문서아의 발걸음이 계단 앞에서 멈췄다. 대리석 계단이 기름막으로 번들거렸다. 투명한 기름이 잔뜩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방심했으면 그대로 미끄러져 굴러떨어졌을 게 뻔했다. 서늘한 기운이 가슴속에서 확 치밀어 올랐고, 곧이어 분노가 뒤따라 터졌다. 문서아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했다. 결과는 금방 나왔고 조가희가 시킨 일이었다. 문서아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문서아는 그대로 조가희를 찾아갔다. 조가희의 방 앞. 문서아가 문을 밀어 열려던 순간, 안에서 낮게 깔린 통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나랑 문서아를 비교하래? 그러니까 당해도 싸지.” 조가희는 이를 갈 듯한 목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불구가 돼 봐야 정신 차리지. 그래야 더는 잘난 척 못 하지. 그럼 박태윤도 장애인 아내를 계속 데리고 살 수 있겠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서아가 문을 확 열어젖혔다. 조가희가 놀라 돌아보는 순간, 문서아의 손이 먼저 올라갔다. 찰싹! “조가희, 너... 어디까지 갈 거야.” 조가희가 비명을 삼키기도 전에 문서아의 시선이 벽 한쪽에 세워져 있던 장식용 지팡이에 꽂혔다. 문서아는 지팡이를 낚아채 온 힘을 실어 조가희의 다리를 내려쳤다. “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조가희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 소리쳤다. “문서아, 미쳤어? 네가 날 때리면 박태윤이 널 가만둘 것 같아?” 문서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문서아는 망설임 없이 조가희의 가슴을 거칠게 걷어찼다. 조가희의 몸이 열린 발코니 밖으로 그대로 날아갔다. 풍덩! 조가희가 아래층 수영장으로 떨어지며 커다란 물보라를 튀겼다. “살려... 살려 주세요!” 조가희는 물속에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지만 다리가 부러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연회장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조가희는 여러 손에 끌려 나와 바닥에 널브러졌다.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들러붙은 채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그때 박태윤이 소란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박태윤은 떨고 있는 조가희를 먼저 보고, 곧장 계단 위에 서 있는 문서아를 올려다봤다. 박태윤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문서아, 이것도 네가 한 짓이야?” 조가희는 바닥에 엎드려 박태윤의 바짓단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아주버님... 저 정말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서아 언니가 갑자기 들어와서 제 다리를 부러뜨리고, 저를 수영장에...” 조가희가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전에 아주버님이 저 때문에 서아 언니를 구치소에 보낸 일... 그걸 아직도 원망해서 저를 괴롭히나 봐요.” 박태윤의 시선이 다시 문서아에게 박혔다. 박태윤은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가희 말이 맞아?” 문서아는 박태윤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내가 가희를 그렇게 만든 건...” “그만해.” 박태윤은 날카롭게 문서아의 말을 끊었다. 문서아의 해명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가희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든, 무슨 짓을 했든 네가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다루면 안 돼.” 박태윤이 한층 더 몰아붙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 치고 날뛰는 건 늘 너였어. 가희가 너한테 뭘 할 수 있겠어? 넌 자기 집안 믿고, 내가 봐주니까 어디까지든 막 나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확신에 찬 편견과 뒤집힌 비난이 문서아의 가슴을 바늘로 꿰뚫었다. 숨이 막혀 문서아는 더는 말을 잇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졌다. 문서아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황량하기만 한 웃음이었다. “태윤아,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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