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새해 카운트다운 종소리가 울리던 순간 유한나는 올해의 첫 번째 선물을 받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밀착해 있는 사진 한 장이었다.
불과 십 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딸을 안고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십 분 뒤,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침대를 구르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강호 그룹 황태자가 새해 전야 신인 여배우와 밀회하고 있다는 키워드가 폭발적으로 전 인터넷을 뒤덮었다.
강씨 가문 저택 대연회장, 연회에 참석한 모든 하객의 시선이 일제히 유한나에게 쏠리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
비서가 급히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기존 방식대로 실검을 더 키워서 완전히 터뜨릴까요?”
유한나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요. 홍보팀에 연락해서 기사 내리세요.”
비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회장을 가득 채우던 속삭임도 잠시 멎었다가 곧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왔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기사를 내리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전에는 세상 사람 다 알게 하려고 안달이었잖아.”
“그러게 말이야. 지난번에 모델이랑 차 안에서 사진 찍혔을 때 그 슈퍼카를 망치로 부숴버렸잖아.”
“화이트데이 때는 더 심했지. 파티도 끝나기 전에 요트가 불탔잖아.”
“매번 그렇게 난리 쳐도 계속 바람피우니까 이제야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강주혁을 못 잡는다는 거 깨닫고 전술 바꾼 거 아니야? 참으면서 대인배인 척하려고?”
그 모든 말들이 거리낌 없이 유한나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유한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차분하게 연회를 이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유한나가 강주혁을 붙잡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자 방법을 바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러한 생활을 견디면서 유한나도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연회가 끝난 뒤 유한나는 놀다 지쳐 잠든 딸을 안아 방으로 데려다주고 혼자 서재로 올라갔다.
노크하고 문을 열자 안서희가 소파에 앉아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어머님.”
유한나가 조용히 안서희를 불렀다.
안서희는 고개를 들며 숨길 수 없는 죄책감을 드러냈다.
“한나야, 많이 힘들지. 그 죽일 놈을 그냥... 당장 전화할게!”
전화는 곧 연결됐고 안서희는 스피커폰을 켠 채 날카롭게 외쳤다.
“강주혁! 새해 첫날에 집에도 안 들어오고 어디 박혀있어! 당장 기어들어 와!”
전화 너머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여자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강주혁이 나른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머니, 저 지금 좀 바빠요. 내일 가서 사과할게요. 오늘 얘 생일이라서 같이 케이크 자르기로 약속했거든요. 아, 맞다. 한나한테는 오늘 일 처리 꽤 괜찮았다고 전해주세요. 이제야 좀 강씨 가문 며느리 같더라고요.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끊을게요.”
전화가 끊기자 안서희는 분노에 떨며 핸드폰을 소파에 내던졌다.
“빌어먹을 놈!”
안서희의 격한 반응에도 유한나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눈빛으로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어머님, 이번에는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러 온 게 아니에요.”
안서희가 멈칫하자 유한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5년 전 엄마가 간부전일 때 어머님께서 두말없이 간의 절반을 기증해 주셨죠. 그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 주혁 씨를 다잡아달라고 했을 때 저도 동의했어요. 저도 저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그런데 민지가 막 돌을 지났을 때 주혁 씨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죠. 지난 2년 동안 저도 난리 치고 미쳐보고 버릴 체면은 다 버려봤어요. 어머니가 제 편이 되어주신 것도 잘 알지만 이제는 안 될 것 같아요.”
안서희는 깊게 한숨을 쉬며 유한나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한나야, 내가 너를 묶어둔 거야. 원하는 조건 말해줘. 다 들어줄게.”
유한나는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안서희 앞에 밀어두었다.
“이혼하고 싶어요. 그리고 민지 양육권도요.”
안서희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내가 다 처리해 줄게. 대신 보름만 더 같이 있어 다오.”
유한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를 나섰다.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등 뒤에서 안서희의 혼잣말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는 주혁이가 너한테 첫눈에 반해서 꼭 너랑 결혼해야겠다고 했어.”
유한나의 발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강주혁도 한때 분명 그녀에게 진심이었다.
재계에서 소문난 바람둥이가 유한나 때문에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한 사람에게 충성했었다.
프러포즈 날 강주혁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공증한 서류를 유한나 앞에 내밀며 말했다.
“내 모든 건 다 네 거야.”
딸 민지가 태어나던 밤, 유한나는 난산으로 생사를 넘나들었고 강주혁은 태어나 처음으로 유한나를 살려달라고 신에게 빌기도 했다.
강주혁은 자신의 모든 예외와 특권을 유한나에게 주었고 세상은 모두 바람둥이가 드디어 정착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진심이란 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변하는 것이었다.
강주혁에게서 온 고액 송금 알림과 함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다들 네가 달라졌다고 하던데? 대인배가 됐다나 뭐라나. 진짜야? 좀 낯서네. 나 지금 몰락에 있어. 지난달 네가 신고해서 영업정지 먹었다가 오늘 재오픈한 그 클럽. 방 번호는 206호니까 콘돔 좀 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