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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유한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외도를 잡아내고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체면을 구기는 행동을 수도 없이 해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럴 때마다 강주혁은 그녀가 분을 다 풀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성으로 몇 마디 달래고는 그녀 앞에서 태연하게 여자들을 정리해 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임서연이 먼저 민지에게 손을 댔는데 강주혁은 그녀에게 체면을 논하고 있었다. “내연녀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서 내 딸 생일잔치에서 쇼까지 벌여 놓고 지금 나한테 체면을 운운해요?” 강주혁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그때 안서희가 나서지 않았다면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이 번졌을 것이다. 정성껏 준비한 생일 파티는 결국 불쾌감만 남긴 채 끝났다. 하객들은 눈치껏 하나둘 자리를 떴고 연회장에는 어수선한 흔적과 지울 수 없는 어색함만 남았다. 민지는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그날 밤 미열이 낫고 유한나는 밤새 곁을 지켰다. 아이를 재운 뒤 유한나는 조용히 자산 정리에 들어갔다. 그러다 민지의 할아버지가 아이를 위해 따로 마련해 둔 신탁 계좌를 확인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최근 계좌에서 막대한 금액이 임시로 빠져나가 있었고 승인자는 다름 아닌 강주혁이었다. 금액은 사실상 원금 대부분에 해당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타고 치솟았다. 유한나는 곧바로 강주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차를 몰아 곧장 강호 그룹 본사로 향했다. 최상층 대표실 앞에서 비서가 다급히 막아섰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지금...” 유한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곧장 문 앞으로 걸어갔다. 손을 뻗어 문을 열려는 순간 안쪽에서 여자의 신음과 남자의 거친 호흡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유한나는 잠시 멈춰 섰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목 안으로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누르고 문을 밀어 열었다. 사무실 안에는 노골적인 욕정의 기운이 가득했다. 임서연은 상의가 흐트러진 채 치맛자락은 허리까지 말려 올라가 문을 정면으로 마주 본 책상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강주혁은 등을 보인 채 서 있었고 셔츠는 어지럽게 풀어져 있었다. 임서연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유한나와 눈을 마주쳤다. 노골적인 도발이 담긴 시선이었다. 이내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 소리를 내며 강주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강주혁은 잠시 동작을 멈추며 미간을 찌푸릴 뿐 아내에게 현장을 들킨 사람의 당황함은 전혀 없었다.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임서연을 반쯤 뒤로 가린 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야 유한나를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사모님?” 느릿한 어조였다. “무슨 일 있어?” 유한나는 역겨운 두 사람을 더 이상 보지 않고 곧장 자금 내역을 화면에 띄웠다. “신탁 계좌 자금이 거의 다 빠져나갔어요. 당신이 한 거예요?” 강주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뒤에 있던 임서연이 겁먹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주혁 씨, 미안해요. 그 엄청난 위약금이 아니었다면 아가씨 돈을 쓸 일도 없었을 테고 사모님이 화낼 일도 없었을 텐데... 다 저 때문이에요.” 강주혁은 달래듯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린 뒤 그제야 유한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 있어? 지난번 생일 파티에서 네가 사람들 앞에서 얘 체면을 완전히 깎아놨잖아. 마음이 여린 애라 며칠이나 울었다고. 이 돈은 내가 민지 대신 준 보상이라고 생각해. 뭐, 액땜했다고 치자. 응?” ‘보상? 딸의 것을 빼앗아 내연녀에게 보상이라니...’ 유한나는 귀가 울리는 듯했고 눈앞이 순간적으로 까맣게 흐려졌다. 그녀는 아무리 강주혁이 막장이어도 적어도 민지에게만큼은 좋은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마지막 기대마저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렸다. 그때 사무실 문이 두드려졌다. “대표님, 곧 회의 시간입니다.” 강주혁은 아무렇지 않게 셔츠를 정리하며 임서연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강주혁은 그녀 옆을 지나며 잠깐 발걸음을 멈추더니 아이 달래듯 한마디 던졌다. “됐어. 그만 얼굴 좀 펴. 비서한테 이번 시즌 신상 보석 세트 주문해 두라고 했어. 이따 집으로 갈 거야. 우리 딸한테 사과하는 의미로 줘.” 강주혁은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넓은 사무실에는 아직 남아 있는 역겨운 공기와 유한나만이 남았다. 그녀는 익숙한 인테리어를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에 이곳에서 강주혁과 나눴던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강주혁이 이 사무실에서 도대체 몇 명의 여자와 같은 짓을 반복했을지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한때의 진심은 시간이 흐른 지금 변질되어 역겨움과 혐오로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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