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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지환아.” 주여린이 살짝 망설였다. “이거 아진 씨에게 주려던 거 아니야? 내가 받기에는 그렇지.” “괜찮아.” 신지환이 말했다. “아진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맞지? 아진아.” 서아진은 주여린의 손에 들린 그림을 보며 가슴이 칼로 후벼 파듯 너무 아파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응. 신경 안 써.”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신경 쓴다고, 이 그림을 3년이나 찾아 헤맸다고, 은사님의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해야 할까?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여린이 지나가는 말로 잘 그렸다고 말했을 뿐인데 서아진의 기분보다 그 말 한 마디가 더 중요했다. 그때 메뉴가 올라왔다. 신지환은 아주 자연스럽게 주여린에게 반찬을 집어주고 찌개까지 담아주고 나서야 서아진을 챙겼다. 서아진은 앞접시에 놓인 반찬을 본 순간 밥맛이 뚝 떨어졌다. 신지환이 찌개를 담아서 서아진에게 주려는데 앞에 앉은 주여린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입을 감싸 쥐고 눈시울을 붉혔다. “왜 그래?” 신지환이 얼른 그릇을 내려놓으며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데었어...” 주여린이 울먹이며 말했다. “봐봐.” 신지환이 그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주여린의 입술을 살폈다. “빨개졌네. 웨이터. 얼음과 연고 좀 가져다줘요.” 신지환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그릇을 너무 힘껏 내려놓는 바람에 안에 담겨있던 찌개가 그대로 서아진의 손에 떨어졌지만 신지환은 발견하지 못했다. 서아진은 손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따끔거리기 시작했지만 이를 악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 종이로 닦았다. 신지환은 아직도 주여린의 상처를 처리해주며 부드럽게 다독이고 있었다. “조심해야지. 찌개가 얼마나 뜨거 운데. 많이 아파?” “아파...” 주여린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 약 발랐으니까 금방 좋아질 거야.” 서아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이 나올 뻔했다. 분명 그녀도 손을 다쳤는데 발견조차 하지 못하니 말이다. 신지환은 늘 그랬듯 주여린만 있으면 서아진은 안중에도 없었다. 작은 해프닝이 끝나고 세 사람은 식사를 이어갔다.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통유리창이 그대로 깨졌고 유리 파편이 마치 폭우처럼 그들을 덮쳤다. “조심해.” 신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여린을 품에 안고 몸으로 날아오는 유리 파편을 막아냈다. 한편, 서아진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날카로운 유리 파편에 팔과 얼굴, 그리고 목을 긁혔다. 뜨거운 피가 유리 파편과 함께 흘러내려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너무 아팠다. 유리 파편 위로 쓰러진 서아진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데 신지환이 긴장한 표정으로 주여린을 살피는 게 보였다. “여린아, 괜찮아? 다치지 않았지?” 신지환이 조심스럽게 주여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찰과상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다친 곳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신지환은 겨우 한시름 놓으며 고개를 돌려 서아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진아.” 안색이 변한 신지환이 달려왔다. “너 어때?” 서아진이 그런 신지환을 보며 대꾸하려는데 입을 벌리자마자 피가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왔다. 신지환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었지만 서아진은 그저 씁쓸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신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여린을 보호했고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도 서아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주여린의 안전부터 확인했다. 10년, 함께 한 시간이 10년이면 서아진이 신지환을 사랑한 시간도 10년이다. 그 시간 동안 서아진은 신지환을 어둠 속에서 구원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주여린이 등장하자그동안의 노력은 한낱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남자 조연의 마음은 영원히 여자 주인공에게로 향한다. 서아진은 이것이 원작의 설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어리석게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결말을 바꾸려 했다. 눈을 감은 서아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고 온몸에 붕대를 감은 것도 모자라 얼굴까지 거즈가 붙어 있었다. 눈을 뜨자 시야에 하얀 천장이 보였고 소독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실에는 서아진 혼자였는데 텅 비어서 그런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는 환자가 깬 걸 보고 다가가 물었다. “깼어요? 몸은 좀 어때요?” 서아진은 입을 열었지만 목이 말라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간호사가 서아진을 일으켜 앉히더니 물을 한 잔 따라줬다. “유리 파편에 긁힌 상처가 많아요. 급소를 피해가서 다행이에요.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아요.” 서아진이 한시름 놓았다. 떠나면 이 몸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흉터를 안고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보호자분 오셨나요?” 간호사가 물었다. “비용 처리를 해야 해서요.” “아니요.” 서아진이 말했다. “제가 직접 갈게요.” 간호사는 그런 서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레이를 들고 나갔다. 채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서아진은 간호사들이 복도에서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똑같이 입원했는데 옆 병실의 주여린 씨는 찰과상임에도 신 대표님이 알뜰살뜰 보살피더라. 전문가 회진까지 잡고 다 따라다니잖아. 서아진 씨는 심하게 다쳤는데 아무도 안 오고... 참 같은 사람이어도 팔자는 다르단 말이지.” “신 대표가 서아진 씨 약혼자라고 했나?” “그래. 그런데 약혼자 같은 구석이 있어? 서아진 씨가 병원에 실려 온 지도 한참 됐는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히려 주여린 씨 병실만 번질나게 드나들잖아.” “쯧쯧. 사랑하고 아니고가 이렇게 차이 나서야.”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서아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사랑하고 아니고의 차이라니, 진작 알았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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