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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서아진은 직접 비용을 처리하고 스스로를 챙겼다. 홀로 약을 바꾸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동안 신지환에게는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봤자 받지 않을 게 뻔했고 받았다고 해도 바쁘니까 이따 보러 가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것이다. 그건 보러 오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사흘 후, 서아진은 드디어 침대에서 내려와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휠체어를 밀고 복도에 바람 쐬러 나가는 데 병실을 나서자마자 신지환과 마주쳤다. 주여린의 병실에서 나오던 신지환은 서아진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뚜벅뚜벅 걸어왔다. “아진아. 네가 왜... 여기 있어?” 서아진은 그런 신지환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여기 입원한지만 사흘이 되는데 한 번도 보러 오지 않더니 마주쳐서 하는 첫마디가 왜 여기 있냐는 말이었다. “나도 다쳤어.” 서아진이 아무런 기복 없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신지환은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 내가 요새 너무 바빠서 보러 가지 못했네. 많이 다친 거야?” “아니.” 서아진이 말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야.” 신지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진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서아진은 그런 신지환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많이 다쳤으니까 너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말할까? 그러면 남을 수는 있고?” 신지환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여린은 여기에 친구가 없어. 혼자 무서워하는데 옆에 있어 줘야지. 원래도 몸이 약한데 이번에 크게 놀라서 상태가 안 좋아... 아진아, 너는 내 약혼녀니까 이해해 줄 거지? 맞지?” 이해, 또 이해다. 서아진은 이런 상황이 너무 우스웠지만 도무지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 서아진이 말했다. “이해해.” 신지환이 한시름 놓았다.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아진은 착하니까.” 신지환이 휠체어를 밀어주며 말했다. “가자. 옥상 가서 바람 좀 쐬자. 이러면... 옆에 있어 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서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상은 바람이 셌다. 신지환은 서아진을 데리고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도시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고 가까이서 병원의 잔디밭에 몇몇 환자가 산책하는 게 보였다. 신지환은 화제를 찾느라 상처는 아직 아픈지, 의사는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말투는 보기 드물게 부드러웠고 뭔가를 보상하려는 듯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서아진은 단답을 이어가며 아무런 정서적인 기복도 보이지 않았다. 신지환은 그런 서아진의 차가운 옆모습과 눈동자에 깃든 삭막함을 읽어내고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서아진이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는 그에게 의지하고 그를 향해 웃고 그의 조그마한 관심에도 아이처럼 좋아하는 서아진이 아니었다. 신지환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주여린이었다. 전화를 받은 신지환이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죽이 먹고 싶다고? 알았어. 지금 바로 사 올게. 너는 어디 가지 말고 병실에서 얌전히 기다려.” 전화를 끊은 신지환이 서아진에게 말했다. “아진아. 여진이 죽을 먹고 싶다는데 잠깐 사러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려. 오면 다시 데리러 올게.” 서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지환은 서아진이 묵인했다고 생각해 몸을 돌려 빠르게 옥상을 빠져나갔다. 서아진은 신지환이 문을 열고 나가자 고개를 돌려 먼 곳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다.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도 신지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아진이 혼자 돌아가려고 휠체어를 끌고 문 쪽으로 가보니 문은 어느새 잠겨 있었다. 누구 없냐고 몇 번을 불렀지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핸드폰도 가져오지 않아 연락할 수조차 없는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빗줄기가 몸에 떨어져 붕대가 젖어 들자 상처가 따끔거렸다. 서아진은 구석에 앉아 몸을 꼭 끌어안은 채 추워서 부들부들 떨었다. ‘신지환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잊었을 테지.’ 지금쯤 죽을 사 들고 돌아와 주여린이 먹는 걸 보고 얘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서아진을 옥상에 두고 왔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렇게 서아진은 옥상에서 밤새 비를 맞았다. 이튿날 아침, 도우미가 청소하러 왔다가 서아진을 발견했다. 병실로 옮겨졌을 때는 열이 펄펄 끓었고 상처도 덧나 있었다. 의사가 상처를 처리하고 해열제를 놓아주며 푹 쉬라고 말했지만 서아진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고도 마음이 잔잔하기만 했다. 분노도 원망도 실망도 아닌 이럴 줄 알았다는 덤덤함이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신지환은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아무래도 서아진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퇴원하는 날 서아진은 직접 물건을 정리하고 차를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짐을 내려두고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연 서아진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신지환이 선물한 주얼리, 가방, 그리고 선물까지 모조리 찾아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절반쯤 정리했을 때 문이 열렸고 신지환이 안으로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차키를 들고 있는 걸 봐서는 금방 일 처리를 끝내고 들어오는 길 같았다. 그러다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꽉 찬 쓰레기통과 옆에 놓인 자잘한 물건을 보고 잠깐 넋을 잃었다. “아진아. 뭐해?” 안으로 들어온 신지환은 쓰레기통에 담긴 익숙한 물건들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전에 내가 선물한 것들 아니야? 왜 버리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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