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구급대장은 서아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주여린을 구급차에 실었고 신지환도 따라서 구급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는데 서아진은 신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음? 다음은 없어.’
서아진에게는 다음이랄게 없었다.
뒤늦게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서아진은 혼수상태였다. 동상이 너무 심한 데다 전에 다쳤던 상처가 감염되면서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의사가 오랜 시간 응급 처치한 덕분에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실이었고 여전히 혼자였다. 서아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제 더는 슬프거나 화가 나지 않았고 실망할 것도 없었다.
그때 오랫동안 잠잠하던 시스템이 갑자기 나타났다.
[주인님, 공략에는 실패하셨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 특권을 하나 신청했습니다.]
“무슨 특권?”
서아진이 속으로 물었다.
[차주에 열리는 별똥별 배 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 주인님이 떠나기로 약속된 화재에서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떠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안정적으로 빠져나가면서 몸은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서아진이 멈칫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
시스템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 제가 밉지 않으신가요?]
“내가 왜 너를 미워해야 하는데?”
서아진이 물었다.
[이 소설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달성할 수 없는 임무를 드렸잖아요.]
서아진이 웃었다.
“너를 탓할 건 아니지.”
서아진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선택한 건데.”
10년 전, 이 임무를 수락한 건 서아진이었고 신지환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사람도 서아진이었다. 분명 안될 걸 알면서도 선택했으니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서아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퇴원했다. 의사는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조금 더 치료를 받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서아진은 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시합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어보니 신지환이 주방에 있는 게 보였다. 앞치마를 두른 신지환은 사골 국을 끓이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안으로 들어온 서아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진아.”
신지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렇게 빨리 퇴원했어? 몸은 다 나은 거야?”
“다 나았어.”
서아진이 이렇게 대답하고 주방으로 걸어가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는 사골 국을 들여다봤다. 신지환은 서아진의 시선을 느끼고 이렇게 설명했다.
“여린은 가리는 게 많아서 병원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아. 그래서...”
신지환이 말끝을 흐렸지만 서아진은 바로 알아챘다. 주여린이 음식을 가린다고 직접 사골 국까지 해다 바치려는 것이다. 서아진은 보러 온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서아진은 그런 신지환을 보며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지만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질투하면 안 돼.’
서아진은 이 소설을 접할 때부터 신지환이 주여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 다만 서아진은 이제 독자가 아니라 소설 속으로 들어온 이 세상 사람이었다. 신지환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곧 끝이 보여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아진은 이 소설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소설속의 캐릭터로 남게 될 텐데 이런 감정을 품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아진아.”
신지환은 서아진이 멍을 때리자 이름을 불렀다. 사색에서 빠져나온 서아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서아진은 식탁으로 걸어가 종이와 펜을 꺼내 설계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지환은 바로 가지 않고 서아진이 그린 도면을 살폈다.
“뭐해?”
“대회 준비.”
서아진이 말했다.
“별똥별 배 디자인 대회.”
“대회?”
신지환이 눈썹을 추켜세웠다.
“이기면 뭐 나와?”
“이기면 뭐 나와.”
서아진이 말했다.
“지면 벌도 받고.”
“지면 무슨 벌을 받는데?”
신지환이 웃으며 서아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어떤 수준인지 내가 아는데 무조건 일등 할 거야.”
서아진이 멈칫하며 입을 열려는데 신지환의 핸드폰이 울렸다. 주여린이었다.
“지환아. 사골 국은 어떻게 됐어? 너무 배고파...”
주여린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다 됐어. 바로 갈게.”
신지환이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더니 서아진에게 말했다.
“대회 준비 잘하고. 파이팅.”
서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지환이 도시락을 들고 다급하게 집을 나섰다.
서아진은 신지환이 문을 닫고 나가는 걸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그림에 몰두했다. 그러자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던 아픔도 천천히 사라졌다.
그 뒤로 며칠간 신지환은 병원에서 주여린을 보살피느라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서아진은 개의치 않고 대회 준비에만 몰두했다.
대회 전날, 서아진은 현장 확인하러 갔다가 대기존에서 신지환과 주여린을 마주쳤다. 신지환은 주여린과 함께 대회 참전 자료를 점검하며 고개를 숙이고 주여린이 하는 말을 듣다가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주기도 했다.
신지환은 서아진도 현장에 있다는 건 눈치 채지 못했지만 주여린이 발견하고 우쭐거리듯 웃었다. 서아진은 그런 주여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회는 총 세 번의 투표로 이뤄졌고 서아진은 두 번의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생기로 차넘치는 서아진의 디자인이 심사 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세 번째 투표가 시작되고 서아진은 심사위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승리를 예감했다. 곧이어 사회자가 대회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별똥별 배 디자인 대회의 대상 수상자는... 주여린 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