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심민지를 내려다보는 성지태의 두 눈에 혐오가 가득했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이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이 되다니.”
“절 놓아주실 건가요, 대표님?”
“당장 이 손 놓지 않으면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
심민지는 성지태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손을 황급히 떼어냈다. 긴장됐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는 드디어 그녀를 놓아주었다.
존엄을 내던지고 위산이 역류할 때까지 술을 마신 끝에 겨우 일자리를 지켜냈다. 그 일자리도 입에 풀칠만 할 수 있게 해줄 뿐이지만 말이다.
환하게 웃던 심민지의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비굴하게 매달리면서 빌어야 하는 건데?’
술집의 청소 아줌마가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사지 멀쩡하면 제대로 된 일을 해야죠. 몸이나 팔고 다니니까 남들이 무시하잖아요.”
심민지를 무시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이젠 신경 쓸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지태 일행이 떠난 후 심민지는 취기가 급격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기 전에 미리 숙취 해소제를 먹었지만 그래도 버티기 힘들었다. 속이 메슥거려 당장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청소 아줌마를 껴안았다.
“토하고 싶어요.”
청소 아줌마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자기 여자에게 안기자 소름이 쫙 돋아 다급하게 심민지를 밀쳐냈다.
“내 옷에 토하지 말아요. 여기에 토하면 더더욱 안 되고요. 안 그러면 또 청소해야 한단 말이에요.”
사오십대 정도 돼 보이는 아줌마는 힘이 아주 셌다. 곧장 심민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갔다.
심민지는 화장실에서 담즙까지 토해낼 정도로 속을 전부 비워냈다. 아줌마가 코를 막은 채 그녀에게 물 한 병을 건넸다.
“그 일을 꼭 해야겠어요? 차라리 나처럼 청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적어도 몸을 망치진 않잖아요.”
술에 취한 탓인지 심민지는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다.
“저도 마시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억울하게 모함까지 당해서 감옥에 가셨어요. 빚도 6억 원이나 되고요. 그동안 많이 갚았지만 아무리 갚아도 이자가 붙어서 끝이 안 보여요. 전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가 없는 걸까요? 딱히 바라는 것도 없어요. 하루 세끼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을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아줌마는 마음이 흔들린 듯 그녀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얼른 이곳을 떠나요. 술 취한 아가씨가 밖에 혼자 있으면 위험해요.”
위험한 건 바깥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간 후 세상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함이 밀려왔다. 어릴 적 심민지는 늘 칭찬받는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고 얼굴도 예뻐서 이웃들은 심민지가 나중에 꼭 잘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일이 터지고 이 부잣집 도련님들을 알게 된 후 심민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만약 어머니가 아직 옆에 있다면 저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그녀를 괴롭히지 못했을 거라고.
심민지는 청소 아줌마의 손을 잡고 팔에 머리를 기댔다. 눈물이 다시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엄마, 그거 알아요? 벌써 4년이 지났어요. 나 너무 힘들어요. 밖에서 밥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이젠 초콜릿이 어떤 맛이었던지도 기억이 안 나요...”
청소 아줌마는 난처해하며 심민지를 일으켰다.
“아가씨, 휴대폰 좀 줘봐요. 내가 아가씨 엄마한테 전화해 줄게요.”
“우리 엄마요?”
심민지의 두 눈이 흐려지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돌아가셨어요, 이미.”
아줌마의 얼굴에 연민이 짙어졌다.
“어휴. 잠깐 기다려봐요. 내가 뭐라도 좀 사 올게요.”
잠시 후 청소 아줌마가 해물죽 한 그릇을 들고 돌아왔다.
심민지는 그녀가 들고 있는 해물죽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주시는 거예요?”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안 좋을 거 아니에요. 이거라도 먹어요.”
그녀는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 세상이 나쁜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 한 줌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고개를 들어 청소 아줌마를 보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심민지는 두 손으로 해물죽을 감쌌다. 너무나 따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술집에서 나온 후 성지태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긴 했지만 피우지는 않았다.
정우빈이 술잔 두 개를 가지고 다가왔다.
“왜 혼자 술이야? 내가 같이 마셔줄게.”
성지태는 정우빈과 잔을 부딪친 후 다시 혼자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의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알아챈 정우빈은 심민지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
오늘 심민지의 모습을 보면서 정우빈 역시 마음이 불편했다. 한때 해맑던 소녀가 하루아침에 타락하고 말았다. 비극 속의 아름다운 여인이 처참하게 짓밟힌 듯한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사실 심민지는 좋은 여자는 아니었다. 대학교 때 돈밖에 모르는 속물이었고 돈 때문에 몸까지 팔았다. 그때는 타락했어도 여전히 오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오만함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천사가 날개가 꺾여 인간 세상에 떨어져 온갖 고초를 겪는 것 같았다.
정우빈이 갑자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 예전에 심민지한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어?”
담배에 불을 붙이던 성지태가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없어. 그냥 가지고 논 것뿐이야.”
“하긴. 그런 여자는 마음을 줄 가치가 없지.”
조금 전 심민지가 춤추던 장면이 정우빈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여전히 예쁘긴 하더라. 가지고 놀기엔 딱이겠어. 어차피 책임질 필요도 없으니까.”
성지태가 정우빈을 걷어찼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정우빈이 종아리를 부여잡고 투덜거렸다.
“뭐야, 왜 이래? 우리 주변에 그런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친구가 가지고 놀던 여자를 내가 왜 건드리겠어?”
갑자기 조용한 이 바가 답답하게 느껴진 성지태는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대학 시절의 심민지는 비록 돈을 밝혔지만 적어도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변한 걸까?
해물죽을 먹고 나니 심민지는 속이 한결 편해졌다. 아깝지만 그래도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아니면 오늘 너무 많은 일을 겪은 탓인지 그녀는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그녀가 막 감옥에서 나왔을 때 지하실에서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입을 옷도 없던 장면이 반복해서 꿈에 나타났다.
매일 밤 누가 갑자기 낡은 임대 아파트의 얇은 칸막이를 부수고 들이닥칠까 두려워하며 잠들어야 했다.
그리고 도시의 기생충처럼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만 살아야 했다.
일자리를 구할 때 심민지가 전과자라는 소리만 들으면 바로 거절했다. 특히 그녀가 감옥에 갔던 이유를 알고 나면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심지어 룸메이트는 그녀가 더럽다면서 그녀의 물건을 절대 쓰지 않았고 함께 밥도 먹지 않았다.
심민지가 실수로 룸메이트의 물건을 만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버리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내 물건을 또 만졌다간 죽여버릴 거야.”
한번은 룸메이트의 수건을 건드린 적이 있었는데 룸메이트는 남자친구를 불러 심민지를 구타했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쥔 채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얻어맞았다. 몇 대 맞고 나니 입안에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렇게 때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남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방으로 끌고 가서 옷을 거칠게 찢어버렸다.
놀란 룸메이트가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차피 몸 파는 여자라며? 잠깐 가지고 놀아도 괜찮아.”
“더러워 죽겠어. 얘를 건드리면 너랑 헤어질 거야.”
심민지는 순간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룸메이트는 남자친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더럽다고만 생각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이처럼 뒤틀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상이었고 정상적인 사람을 만나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남자는 룸메이트가 정말 화가 났다는 걸 보고서야 흥미를 잃고 심민지를 밀쳐냈다.
룸메이트는 즉시 심민지에게 다가가 뺨을 후려쳤다.
“걸레 같은 년, 감히 내 남친을 꼬셔?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그냥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지 그래?”
이 한마디가 그녀에게는 엄청난 치욕으로 다가왔다.
휴대폰으로 112를 눌렀으나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감옥에 다녀와서 경찰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심문실의 강렬한 조명을 다시 마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눈 부신 불빛은 심민지의 모든 과거를 벗겨내 타인에게 끊임없이 심판받게 할 것이다.
병원에 갈 돈도 없었던 심민지는 낡은 아파트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사흘 밤낮을 고열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