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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심민지는 치맛자락을 찢어버렸다. 전보다 노출이 심해진 옷차림은 폴 댄스를 추기에 아주 알맞았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미모가 뛰어났다. 아버지의 사업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잘 나갈 때 그녀의 미모는 ‘명함’과도 같았다. 하지만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모든 것을 잃은 후 지켜줄 힘이 없어진 아름다움은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아버지는 심민지가 삶을 멋지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녀가 춤을 좋아하자 돈이 얼마나 들든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게 했고 최선을 다해 지원해줬다. 그러나 춤은 심민지에게 좋은 운을 단 한 번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드디어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선보일 때가 왔다. 비록 남자의 시선을 끄기 위해서일지라도 말이다. 심민지는 밀려오는 씁쓸함을 억누르면서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성지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심민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무대에는 왜 올라가?” 정우빈도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모르지. 술 마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옷을 찢어버리네?” 서현우가 일어선 정우빈을 다시 앉혔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일단 지켜보자.” 심민지는 무대 위의 폴대를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을 음악에 맡기고는 춤을 추던 감각을 천천히 찾았다. 한 손으로 폴대를 단단히 붙잡고 몸을 비비는 듯한 동작을 취하더니 순식간에 두 다리를 들고 폴대에 매달렸다. 그녀는 거꾸로 선 채 객석을 내려다보았다. 고난도 동작을 이어가자 무대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심민지에게 향했다. 객석은 심민지의 춤을 보며 열광하기만 할 뿐 그녀가 이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눈물이 심민지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몸을 돌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가 돌아섰을 땐 다시 환하게 웃었다. 성지태는 술잔을 쥔 채 어두운 눈으로 춤을 추는 심민지를 지켜봤다. 바로 그때 심민지의 결연한 눈빛과 마주쳤다. 그가 술잔을 꽉 쥐자 잔 속의 술이 미세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흔들렸다. 사람들은 서서히 무대 쪽으로 몰려들었다. 남자들은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박수를 치거나 음흉하게 휘파람을 불어대며 소리쳤다. “너무 예뻐. 끝내주는데?” 심민지는 객석을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가끔 춤을 추다가 성지태만 힐끗거렸다. 성지태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이십여 미터 떨어졌는데도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VIP석에 앉아 있던 정우빈은 심민지가 연속으로 고난도 동작을 해내는 걸 보고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대박. 꽤 잘 추는데?” 서현우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객석을 훑어보았다. 남자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당장이라도 무대 위로 달려들 태세였다. 그 모습에 서현우가 턱을 괸 채 평가했다. “기술도 좋고 섹시하기까지 해. 요염함이 정말 타고난 것 같아. 어디서 일하든 무조건 그 가게의 간판이겠지? 가게 장사도 엄청 잘 되겠어.” 서현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지태가 들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성지태의 상태를 예의주시하던 무대 위의 DJ는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바로 음악을 꺼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성지태에게 향했다. 성씨 가문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심민지도 재빨리 폴대에서 내려왔다. 도대체 누가 성지태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녀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기를 바랐다. 성지태가 심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이리 와.” 그러고는 DJ를 향해 손짓했다. “음악 계속 틀어.” 주변 사람들은 성지태가 심민지를 손 보려는 한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무대에서 내려온 심민지는 성지태와 1m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멈춰 섰다. “제 춤을 보시고 화가 조금 풀리셨나요?” 성지태가 심민지를 확 잡아당기더니 턱을 잡고 비아냥거렸다. “원래 이렇게 상스러운 여자였어? 예전의 직업병이 도졌나?” 그 말에 심민지는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 “제가 했는지 안 했는지 대표님이 잘 아실 텐데요.” “그래? 그럼 내가 15일이나 구치소에 다녀왔던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사과하러 온 거예요.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성지태는 혐오 가득한 얼굴로 심민지를 밀쳐내고는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그녀를 용서했는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둘러보기만 했다. 난감해하는 심민지를 본 정우빈은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사과하러 왔으면 성의를 보여야지.” 심민지의 시선이 술잔에 향했다. ‘성지태가 방금 말한 성의라는 게 술을 같이 마시자는 뜻이었어?’ 힘을 가진 자들과 엮이기 싫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음속에 정해둔 답이 분명 있었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헛수고하는 걸 만족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심민지는 고분고분 술잔을 들었다. “마실게요...” 그러고는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정우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술 잘 마시는데?” 그가 다시 잔을 채우고 건배하자 심민지는 망설임 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녀가 술을 시원하게 마시는 걸 보고는 서현우도 잔을 부딪쳤다. “프로 정신이 아주 투철하구나.” 술잔을 들고 있던 심민지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힘주어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비싼 술이라도 지독한 쓴맛은 여전했다. 심민지는 끝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몇 년간 쌓아 올린 체면을 지키고 싶었다. “전 호텔의 영업 팀장입니다.” 정우빈은 그녀를 이해하는 척했다. “요즘은 그런 일도 괜찮지. 젊음을 팔아먹는 일도 평생 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우리 다 명문대 나왔는데 그런 일 하면 체면이 구겨져.” 서현우가 술 한잔을 따른 다음 잔을 부딪쳤다. “그런 따분한 얘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어쩌면 그들에게 여자는 그저 한낱 즐길 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여 심민지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해명하든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고 들을 필요도 없다고 여길 것이다. 심민지의 존엄과 체면, 그리고 명예는 그들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신경 쓰는 건 심민지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냐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속에서 치미는 메슥거림을 참아가면서 스스로 술을 따른 다음 단숨에 들이켰다. 가뜩이나 술이 약한데 이젠 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구역질을 참으며 고개를 들어 성지태를 쳐다봤다. “이제 만족하셨나요?” 성지태의 표정이 날카로워졌고 목소리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주 신나게 마시던데?” 심민지는 그가 아직 만족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목을 젖히고 술병째로 들이켰다. 이 향락의 세계를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씁쓸함과 양주의 쓴맛을 힘겹게 삼켜버렸다. 성지태는 심민지가 병째 술을 들이켜는 모습을 경멸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상스러운 것.” 그러다가 그녀의 눈가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고 말았다. 어두운 조명 아래 눈물이 다채로운 빛깔로 반짝였다. 성지태는 짜증이 난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눈앞의 테이블을 발로 걷어찼다. “그만해. 재미없어.” 심민지가 마시던 술이 아직 반쯤 남았다. 그녀는 황급히 성지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대표님, 이제 만족하셨나요? 만족하셨다면 절 이만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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