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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래. 어쨌거나 시도는 해봐야지. 자존심 같은 건 나한테 사치품이니까.’ 다음 날 저녁 심민지는 성지태가 있는 고급 바를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경호원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님, 복장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 심민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온 여성들은 노출이 심하거나 고급스러운 옷차림이었다. 정장이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쇼핑몰로 달려가 비교적 저렴한 가게에서 노출이 있는 옷을 골랐다. 거울 앞에 선 심민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참 싸구려 같네.’ 그녀가 고른 옷은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옷이었다. 주머니에 있는 몇만 원으로 고급스러워질 수가 없었다. 수년간 일하여 월급이 적지는 않았지만 6억 원에 달하는 빚 때문에 월급날이면 빚쟁이들은 생활비 몇만 원만 남기고 전부 가져가 버렸다. 게다가 교도소에 갔다 온 터라 아무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고 신용 대출도 불가능했다. 몇 년 동안 은행 잔액이 여섯 자릿수를 넘겨본 적이 없었다. 만약 호텔에서 해고당하여 갈 곳을 잃는다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며칠 동안 정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살 방법이 있었더라면 어찌 스스로 이런 굴욕을 택하겠는가? 바의 경호원은 심민지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그나마 얼굴은 볼만하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안으로 들여보냈다. 성지태의 일행들이 전부 재벌 2세라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 술집에서 가장 미친 듯이 놀았고 몸짓 하나하나에 돈으로 쌓아 올린 오만함이 묻어났다. 무대 위, 성지태의 친구 정우빈이 제정신이 아닌 듯 샴페인을 마구 뿌려대고 있었다. 정우빈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얘들아, 오늘 밤 끝까지 마셔보자...” 그때 그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로 향하더니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대박. 나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정우빈이 무대에서 뛰어 내려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심민지? 정말 너 맞아? 잘못 본 줄 알았어.” 순간 모두의 시선이 심민지에게 쏠렸다. 바 안에 성지태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대학 동기들도 꽤 많았다. 정우빈의 외침에 몇몇이 심민지를 알아봤다. 여자 셋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심민지에게까지 들렸다. “쟤가 심민지라고? 우빈이가 이름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못 알아볼 뻔했어. 지금은 재벌 집 아가씨 티가 전혀 없는데? “재벌 집 아가씨는 무슨. 그냥 속물인데. 쟤 예전에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려고 재벌 집 아가씨인 척했잖아. 명품 짝퉁을 들고 다니면 지태를 꼬셔서 신분 상승할 줄 알았는데 결국 지태한테 들켜서 빚만 잔뜩 졌지. 빚 갚으려고 몸까지 판다고 들었어.” “그게 정말이야?” “당연하지. 지태가 그 사실을 알고 쟤를 하마터면 죽일 뻔했어.” “진짜 천하의 몹쓸 년이구나. 지태가 그때 쟤를 얼마나 사랑했었는데 감히 배신하다니.” ‘날 사랑했다고? 어이가 없어서 원. 성지태가 언제 날 사랑했는데?’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당장 달려가 해명했을 테지만 지난 몇 년간 어렵게 사느라 의욕이 모두 사라져 이젠 변명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변명해봤자 의미가 없었고 아무도 심민지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밝힌다 해도 그녀가 처한 곤경은 여전할 터. 심민지의 옷차림을 꼼꼼히 살피던 정우빈이 경멸의 기색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혹시 지금 일하는 중이야?” 정우빈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클럽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민지의 심장을 찔렀다. 수치심과 당혹감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했다. 손가락이 차가워졌고 수천 개의 바늘로 얼굴을 찌른 것처럼 따가웠다. 성지태가 심민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옷차림이 뭐야, 이게?” 성지태의 또 다른 친구 서현우가 다가와 성지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착한 척했다. “너무 삐딱하게 보지 마. 쟤도 힘들게 돈을 버는 중인데. 이왕 온 거 우리랑 같이 술이나 마시자.” 성지태가 서현우를 밀쳤다. “더러워서 싫어.” ‘더럽다고?’ 그의 한마디에 심민지는 심장이 마비될 정도로 아팠다.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재벌 2세들이 그녀를 경멸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모욕을 직접 들으니 감당하기 힘들었다. 오래된 상처가 다시 터져 피를 흐르는 것만 같았다. 심민지는 도망치고 싶었으나 도망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성지태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성지태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무슨 일로 찾아왔어?” “대표님, 제발 저 좀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제가 눈에 거슬린다면 앞으로 대표님의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호텔에서 하는 성신 그룹 회의도 꼭 휴가 내고 피할게요.” 성지태는 아무 말 없이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빛이 그의 어두운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라이터를 끈 후 심민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건들거리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해야 허락하시겠습니까?” 서현우가 자리에 앉더니 성지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럼 성의를 보여줘야지.” 심민지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기 전에 성지태가 그녀를 곤란하게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떻게든 참아야만 했다. 심민지에게는 생존과 체면의 문제였으니까. “성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성지태는 반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네가 뭘 가졌느냐에 달렸지.” ‘내가 뭘 가졌느냐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거라곤 빚 6억 원에 건강하지 않은 몸뚱어리뿐이었다. 늘 저혈당과 빈혈,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그리고 성지태가 놓아주지 않는다면 일자리도 당장 잃을 판이었다. 심민지가 가진 유일한 건 춤 실력이었다. 예전에 성지태는 그녀가 춤추는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고 했었다. 어쩌면 성지태는 심민지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그에게 비굴하게 아첨하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망가뜨리려면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으면 되었다. ‘짓밟고 싶다면 짓밟으라고 하지, 뭐. 살 수만 있게 내버려 두면 돼.’ 주위를 둘러보던 심민지는 무대 중앙에 세워진 폴대를 발견했다. “대표님, 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대표님을 잠시라도 즐겁게 해드린다면 저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성지태는 갑자기 흥미가 생긴 듯 몸을 뒤로 젖히면서 심민지를 쳐다봤다. “한번 해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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