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서울 최고의 프로파일러 강태리. 그녀의 두 눈은 묻어버린 진실까지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으로 수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유일하게 간파하지 못한 것은 바로 곁에 있는 남자의 거짓말이었다.
그녀 앞에 앉은 남편 육지헌. 그는 손가락에 담배를 짚고 깊게 빨아들였다.
그의 뒤에는 덩치 큰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고 그들 사이에 놓인 의료용 이송 상자에서는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게 뭔지 알아?”
육지헌이 담뱃불로 상자를 툭툭 쳤다. 마치 생명과는 무관한 흔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국에 유일한 네 어머니와 맞는 신장이야. 수술실은 이미 준비됐어. 이 신장만 기다리는 중이지.”
그가 서류 한 장을 그녀 앞에 밀었다. 종이가 테이블과 마찰하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해. 내일 민희의 거짓말 탐지기 통과를 도와주면 네 어머니는 살 수 있어.”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안에는 노골적인 거래가 담겨 있었다.
강태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고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한 달 전, 그녀의 선생님인 임형식 교수님이 자택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모든 증거는 육지헌이 심장처럼 아끼고 먼지 묻혀서는 안 될 하얀 장미, 소민희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포 영장이 발부되려는 찰나, 육지헌이 나섰다.
인터넷에는 임형식 교수가 직위를 이용해 여학생들과 범죄자 가족들을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쏟아졌다.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되었고 소민희는 손가락질받는 살인범에서 정당방위 피해자로 둔갑했다.
강태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항소를 계속했지만 증거는 사라졌고 그녀의 직무는 무기한으로 정지되었다.
겨우 강태리는 결정적인 녹취 증거를 찾아 소민희를 체포하고 전문적인 거짓말 탐지기가 동원된 심문 기회를 끌어냈다.
그 조사를 하루 앞둔 날, 수술실 앞에서 이영자가 나오길 기다리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이곳으로 끌려왔다. 육지헌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믿었던 깊은 사랑은 모두 육지헌의 연기였다. 그녀와 이영자의 목숨은 육지헌에게 소민희의 손가락 하나만도 못했다.
“너도 강태리 씨가 임 교수님을 죽인 범인이라는 거 알잖아.”
강태리의 목소리는 부서질 것만 같았고 떨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널 친아들처럼 아꼈어. 그동안 너한테 잘해준 거 다 개한테 잘해주기만도 못한 거였어? 어떻게...”
육지헌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남은 시간은 2분 50초.”
강태리가 벽에 걸린 CCTV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이영자의 생체 신호 곡선이 놀랍도록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비가 내리던 어느 밤, 낡은 우산을 쓰고 세 시간 동안 학교 앞에서 자신을 기다려줬던 이영자를 떠올렸다.
강태리가 처음 월급을 받았을 때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우리 태리가 이제 다 컸구나. 엄마는 네가 자랑스럽다.”
“알겠어. 약속할게”
볼펜이 손안에서 심하게 떨렸다. 결국 잉크 자국이 종이 위에 번지며 응고되지 못한 핏방울처럼 흘러내렸다.
열두 시간 후, 육지헌의 세력이 치밀하게 준비한 대로 소민희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완벽히 통과하고 무죄로 풀려났다.
사건은 빨리 재분류되었고 한때 견고했던 증거 사슬은 무참히 뒤집히고 소멸되었다.
강태리는 미친 듯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수술실의 불은 이미 차갑게 꺼져 있었다. 의사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한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유감입니다. 저희는 신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환자는 이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강태리의 온몸이 차갑게 식어버린 듯 비틀거리며 병실로 향했다. 눈앞의 광경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이영자의 복부 붕대는 피 섞인 조직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식을 기다리기 위해 미리 절개되었던 수술 상처가 흉측하게 벌어져 거즈 아래로 내부가 언뜻 보였다.
“엄마...”
강태리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거의 무릎을 꿇듯 침대 앞에 주저앉았다.
이영자가 힘겹게 눈을 떴고 흐릿한 눈동자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간신히 초점을 맞췄다.
그녀는 딸에게 마지막 위로의 미소를 보여주려는 듯했지만 갈라진 입술이 움직이자 가는 핏줄기가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울지 마. 태리야, 울지 마.”
그녀는 수액 관이 가득 꽂힌 손을 부들부들 떨며 강태리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엄마는 다 알아, 네 탓 아니야...”
“엄마는... 너 두고 가는 게... 마음이 아파. 내가 가면 너 혼자니까 지헌이랑 잘 살아. 엄마가 낡은 집도 너한테 남길게. 만약 지헌이가 널 힘들게 하면 참지 마.”
강태리는 그 마르고 여윈 손을 꼭 잡고 볼에 대었다.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제가 너무 무능해서...”
이영자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는 게 나아. 이제부터는... 너한테 짐이 안 되니까...”
그녀는 눈빛이 흐릿해졌지만 애써 말을 이었다.
“잘... 지내야 해...”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터져 나왔지만 강태리는 여전히 급격히 온기를 잃고 차갑게 굳어가는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녀는 입을 크게 벌리고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렸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르는 듯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만이 아직 굳지 않은 손바닥의 피와 섞여 차가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옥상의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김도운이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가냘픈 몸은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선배님.”
그녀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한 탄식 같았지만 눈에는 거의 파멸에 가까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에 말씀하셨던 거... 할게요. 저한테 15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