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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김도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내 그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진지하게 다시 확인했다. “강태리,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강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이제 안 계시는데 여기에 미련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육지헌과는... 엄마 장례만 마치면 이혼할 거예요.” 김도운은 강태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와 임 교수님 일, 이미 다 알고 있어. 돌아가신 분은 어쩔 수 없지만 산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지.” 강태리는 김도운이 자신이 자살 같은 충동적인 일을 저지를까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걱정하지 마세요. 임 교수님을 죽인 진짜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어요. 반드시 선생님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소민희가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 이영자의 장례는 간소했다. 평생 고생만 하다 가셨고 친구도 별로 없으셨다. 강태리는 유골함을 안고 빈소 앞에 서서 이영자의 영정 사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강태리를 향해 다정하게 물어볼 것 같았다. “태리야, 저녁에 뭐 먹고 싶니? 엄마가 해줄게.” 머릿속에는 어릴 적 이영자와의 소소한 기억들이 스쳤다. 강태리는 어렸을 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보육원에 입양 희망자가 찾아오면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달려가 인사하며 얌전한 척했지만, 강태리는 멀찍이 웅크리고 앉아 기부받은 탐정 소설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붙임성 없는 성격 때문에 입양될 기회가 계속 없었고 그러다 이영자가 나타났다. 강태리는 말이 없고 눈치도 별로 없었다. 이영자는 개의치 않으시고 한마디 한마디 말을 가르쳐 주셨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분식집을 운영하며 강태리를 공부시켰고 대학원은 물론 나중에 형사에 합격하도록 도왔다. 강태리가 결혼할 때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이 여자는 처음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복을 누린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그녀는 분식집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는 끝없는 투석과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병마는 이미 고단했던 그녀의 몸을 빠르게 휩쓸었다. 그 신장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강태리는 자신의 양심을 팔면 적어도 이영자의 목숨만은 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가 여전히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태리 씨...” 그 목소리에 강태리는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소민희가 백합 한 다발을 들고 빈소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강태리를 보자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일부러 친한 척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헌 오빠가 날 보석시켜줬을 때부터 당신을 찾아왔어요. 당신이 어디 있는지 말해주지 않아서 한참을 헤맸잖아요. 어머님 일...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강태리는 소민희가 앞에서 벌이는 위선적인 연극을 잠잠히 지켜보았다. 소민희는 소림 그룹의 아가씨이자 서울에서 이름난 부잣집 아가씨로 어릴 적부터 육지헌과 알고 지냈다. 육지헌은 예전에 자신이 납치되었을 때 소민희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해 거의 죽어가던 그에게 소민희는 자신의 손을 칼로 베어 피를 먹여주었고 그는 그제야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강태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소민희의 존재를 계속 참아왔다. 하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이영자가 위독해지자 그녀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속에 다른 여자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고 세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비좁기만 했다. “할 말 다 하셨나요? 소민희 씨, 다 했으면 나가 주세요. 여긴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소민희가 강태리의 말 속에 담긴 쫓아내려는 뜻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조금도 당혹스럽거나 난처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강태리 씨, 오늘 온 건 조사 협조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려는 것뿐만 아니라 한 가지 더...” 그녀가 강태리에게 다가가 귀에 살며시 속삭였다. “신장을 내게 양보해 줘서 고마워요.” 강태리가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무슨 소리예요?” 소민희가 입을 가리며 말했다. “모르셨어요? 저를 키워주신 가정부가 위독하셔서 신장 수술이 필요하대요. 지헌 오빠가 그러는데 당신이 저를 위해 신장을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하셔서 오늘 특별히 감사드리러 왔어요.” 말을 마친 그녀가 이영자의 영정사진 앞에 절을 올리려 하자 강태리는 그녀를 밀쳐버렸다. “넌 우리 엄마 앞에 절을 할 자격 없으니 당장 나가. 우리 엄마 천당으로 가는 길을 더럽히지 마.” 강태리의 머릿속에는 소민희의 방금 한 말이 맴돌았고, 육지헌이 약속할 때의 진지한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육지헌이 소민희를 위해 약속을 어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은 선생님을 죽인 범인의 죄를 덮어 주었지만, 육지헌은 본래 이영자에게 줄 신장을 소민희의 가정부에게 넘겨주었다. 육지헌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신장을 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자신이 소민희보다 못하니 당연히 그녀의 엄마도 소민희의 가정부보다 못했다. 강태리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소민희의 눈에 성공한 미소가 스치듯 번졌고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강태리 씨, 전 그냥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저를 반기지 않는다면 이만 갈게요.” 강태리는 더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영단에 놓여 있던 꽃병을 집어 소민희를 향해 던졌다. “꺼져.” 소민희는 꽃병을 피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 소민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으며 차갑게 꾸짖었다. “강태리, 언제까지 이렇게 난동 부릴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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