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나는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황영수의 손에 가죽이 벗겨진 그 사람이 절대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사람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은 아무런 기능을 할 수가 없어 법기라고 불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황영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건 너희 할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야.”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우리 할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라니.
그렇다면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걸까?
게다가 할아버지의 가죽으로 옷이 만들어지다니.
“너희 할아버지는 예전에 사냥꾼이었어. 젊었을 때는 민병대를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도적들을 토벌한 적이 있었지. 그때 너희 할아버지 손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어.”
황영수는 인피로 만들어진 옷을 입으며 내게 말했다.
“그 도적들은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잔악무도한 놈들이야. 온몸에 악한 기운이 득실득실했지.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음에도 벌을 받지 않았어. 오히려 공덕을 쌓게 됐지. 그리고 그 공덕 덕분에 너희 할아버지는 사악한 것들에게 시달릴 일이 전혀 없었어. 그러니 너희 할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는다면 아무리 험한 것이 와도 최소한 시간을 벌 수 있지.”
“그날 너를 받아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너희 할아버지와 약속을 했어. 그 약속 덕분에 나는 신세를 갚을 수 있었지. 그리고 너희 할아버지는 수명이 다하기 직전 내게 자신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
황영수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록 너희 가족은 너를 낳고도 키워주지 않고 내게 떠맡겼지만, 네 할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네게 마땅한 보상을 했어. 아니, 오히려 네가 그들에게 빚을 진 셈이지. 우리 일맥의 규칙을 잊지는 않았지?”
황영수가 내게 그 옷에 관해 설명해 줄 때 나는 마음이 심란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때 그들이 나를 버린 뒤 단 한 번도 나의 소식을 묻거나 나를 보러 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이 조금 원망스러웠었다.
부모의 사랑을 원치 않는 자식은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황영수의 말이 맞았다.
이 옷만으로도 그들은 내게 빚졌던 걸 모두 갚은 셈이다.
그래서 황영수의 말을 들은 후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오늘 밤 제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래서 언젠가 그 집안 가족들이 저를 찾아온다면 꼭 신세를 갚을게요.”
그렇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 그 집안 가족들이다.
그들이 내게 빚진 것을 갚은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단순히 빚을 갚은 것일 뿐,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
황영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뭔가 더 말하려고 했으나 밖에서 갑자기 쾅 소리가 났다.
나는 화들짝 놀라 서둘러 문틈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고 이내 마당 밖의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이 망가진 걸 보았다.
곧이어 검은색의 무언가가 걸음을 옮기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 저, 저건...”
나는 순간 두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18년 동안 그것에 시달렸는데 그것의 생김새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은 체구가 아주 크고 거대했는데 뚱뚱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의 몸에는 인간의 머리가 수도 없이 달려있었다.
그중에는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있었는데 최소 사오십 개 정도는 돼 보였다.
게다가 그들 모두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데다가 이목구비가 잔뜩 일그러진 채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주 섬뜩하고 오싹한 모습이었다.
“빌어먹을, 자정도 아니고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바로 찾아왔네!”
황영수도 매우 놀란 듯했다. 곧이어 그는 내 어깨를 찰싹 치면서 부랴부랴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어서 공양대 아래 숨어 있어. 오늘 밤 찾아온 저건 내가 점쳐봤던 것보다 훨씬 더 험한 거니까 절대 저것에 네 존재를 들키면 안 돼. 혹시라도 네 존재를 들켰다가는 아무도 널 구할 수 없게 될 거야.”
“네, 네. 알겠어요. 할아버지.”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황영수의 말대로 공양대 아래 숨어 천으로 내 모습을 가렸다.
어두컴컴한 공양대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소리가 들렸다.
밖은 잠깐 조용해지더니 잠시 뒤 갑자기 아주 처절하고 비참한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걱정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여러모로 힘들었다.
나는 조금 전 나와 결혼한 아내가 걱정되었다.
황영수의 말에 따르면 내 아내는 조국철의 조상보다도 더 강하다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기괴한 것을 과연 그녀가 막아낼 수 있을까?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녀와 결혼해서 아직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만약 내 아내가 정말로 나 때문에 험한 일을 당한다면 어떡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내 아내가 그것을 막아내지 못해 황영수까지 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초조해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처절하게 울부짖던 소리가 사라지고 갑자기 밖이 조용해졌다.
혹시 끝난 걸까?
그것들이 돌아간 걸까?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서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황원태, 문 열어! 황원태, 너를 찾으러 왔어. 우리랑 같이 돌아가자...”
망할!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아내가 그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황원태, 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황원태, 어서 문 열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점점 더 급박해지면서 처절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점점 커져서 마지막에는 쾅쾅 문을 부술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도 따라서 쿵쾅댔다.
나는 그것이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까 봐 걱정됐는데 그 소리는 다시금 사라졌다.
곧이어 황영수가 밖에서 말했다.
“우리 손주, 이제 괜찮아. 네 아내가 그것들을 쫓아냈으니까 이제 나와도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
나는 내 아내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저렇게 기괴한 것조차 내 아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니.
내가 공양대 아래서 나가려는 순간,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너 절대 나오지 마. 아까 그 말은 내가 한 게 아니야. 저게 내 목소리를 따라 한 거야. 정말 강한 놈이라서 네 아내는 막아내지 못했어. 저놈 곧 쳐들어올 거니까 절대 나오면 안 돼!”
그것 또한 황영수의 목소리였다.
나는 팔을 뻗으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황영수는 평소 나에게 불만이 굉장히 많았다. 비록 내게 이름을 지어준 뒤로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했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줄곧 나를 이놈이나 이 자식, 또는 단명할 놈이라고 불렀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우리 손주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토록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건넨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제일 처음 들려왔던 황영수의 목소리는 가짜였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