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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런 생각이 들자 순간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아주 기괴할 뿐만 아니라 교활하였다. 나는 하마터면 그것이 파놓은 함정에 당할 뻔했다. “이놈아, 저건 네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고 있어.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아. 내가 널 대신해서 막아줄 테니 얼른 도망쳐!” 황영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이번에는 호칭이 정확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일로 나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또 다른 황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이젠 내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에 재미를 들였나 봐? 내가 그냥 풍수만 볼 줄 아는 점쟁이인 줄 알아? 내가 널 처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이놈아, 넌 거기 잘 숨어있어. 나는 나가서 저놈이랑 한 판 싸워볼 거야!” 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밖에서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처절한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따금 황영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놈아, 나랑 네 아내가 저걸 제압했으니까 어서 나와서 도와줘!” “이 자식아, 얼른 나오라니까! 네가 안 나오면 저게 도망칠 수도 있어!” “이 단명할 놈아. 나는 다쳐서 더는 버티기 힘들어. 얼른 나와서 날 구해줘!” ... 황영수의 목소리가 점점 더 많이 들려왔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더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비록 마음은 조급했지만 나는 황영수가 당부했던 대로 공양대 아래 숨어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참 뒤, 황영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다. “이놈아, 안 되겠다. 나랑 네 아내만으로는 저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말한 대로 안에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절대 나오면 안 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고 해도 안 돼. 알겠지?” “그리고 내일 날이 밝은 뒤에 바로 네 아내의 위패를 챙겨서 이곳을 떠나. 내 가방 안에는 너에게 줄 것들이 들어 있으니까 그것도 챙겨가. 명심해. 27살 때 또 한 번 큰 재앙이 찾아오기 전까지 절대 이곳으로 돌아오면 안 돼. 내 말 꼭 명심해!” ‘할아버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서둘러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황영수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목소리를 들어 보니 크게 다친 듯했다. 그 순간 나는 공양대 안에서 뛰쳐나가 황영수, 그리고 내 아내와 함께 그것과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황영수는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가슴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괴로웠음에도 나는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그렇게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몸을 움츠린 채 밖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완전히 조용해지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 나는 그날 밤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수차례 억눌러야 했다. 밖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침 햇살이 공양대 위로 내려앉았을 때, 나는 곧바로 공양대 아래서 뛰쳐나왔다. 집 문과 마당 밖의 문은 완전히 박살 났는데 밖에는 싸운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황영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는 핏자국이 드문드문 있었고 구멍이 크게 난 데다가 피로 빨갛게 물들여진, 인피로 만들어진 옷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할아버지! 흑흑... 할아버지, 빨리 나오라고요. 어디 있는 거예요?” 나는 문밖으로 달려 나가 미친 듯이 황영수를 부르며 애타게 그를 찾았다. 그러나 오전 내내 울면서 황영수를 찾았으나 끝내 그를 찾지 못했다. 나는 결국 넋이 나간 상태로 집으로 들어간 뒤 벽 모서리 쪽으로 걸어가 쭈그려 앉았다. 내 머릿속에는 어렸을 때부터 황영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퉁퉁 부은 눈에서는 또 한 번 눈물이 쏟아졌다. 비록 황영수와 핏줄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그가 나를 받아줬던 이유도 단순히 신세를 갚기 위해서였고 또 항상 내게 짜증을 냈었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황영수와 함께 지내며 나는 그가 진심으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아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진정으로 황영수를 나의 친할아버지처럼 생각했다. 그런 그가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젠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보, 울지 마세요. 어르신은 비록 다치긴 했지만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에요.” 황영수가 내게 잘해줬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슬픔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맑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누구야?” 나는 빨개진 눈으로 집 안을 쭉 둘러본 뒤 방문 앞에 놓여 있던 위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말한 거예요?” “네. 저예요.” 묘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순간 흥분한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위패를 향해 달려간 뒤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우리 할아버지가 죽지 않았다고 한 거예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 있어요?” 나는 위패에 적힌 글자를 빤히 바라보았고, 그제야 비로소 나와 결혼한 내 아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조옥정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미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조옥정이 생전에 결혼한 적이 없음을 의미했다. 내 말을 들은 조옥정은 잠깐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어르신을 찾고 싶으신 건가요?” “할아버지가 다치셨다면서요? 어서 할아버지를 찾아서 치료해 줘야죠!” 나는 초조한 마음에 위패를 흔들며 말했다. “얼른 말해요. 우리 할아버지 지금 대체 어디 계시는 거예요?” 인피로 만들어진 옷에 큰 구멍이 생긴 데다가 바닥에 피까지 가득한 걸 보아 황영수는 꽤 심하게 다친 듯했으니 얼른 그를 치료해야 했다. “죄송하지만 어르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려드릴 수는 없어요.” 조옥정이 계속해 말했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지금 어르신께서 안전하다는 것뿐이에요. 어르신께서는 어떤 곳에 갇혀 있어 그곳을 떠날 수가 없지만 당분간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을 거예요.” 갇혀 있는데 당분간은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 거라니. 나는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 더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말했다. “더는 묻지 말아 주세요. 저는 이미 어르신과 약속했어요. 당신의 스물일곱 살 생일 전까지는 절대 그 일을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제가 그 사실을 얘기한다고 해도 지금의 원태 씨는 어르신을 데려올 수가 없어요.” “지금 원태 씨가 해야 할 일은 어르신의 당부대로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 풍수와 현술 등을 배운 뒤 원태 씨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여자들을 찾아가 결혼식을 치러 그들의 기운으로 앞으로의 재앙을 넘기는 거예요. 우선 원태 씨가 살아남아야 어르신도 구할 수 있어요!” 조옥정의 말을 들은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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