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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알겠어요. 여기서 하룻밤 묵을게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기대 어린 눈빛을 외면하고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던 나는 끝내 동의했다. 게다가 조국철은 내 은인이었고 황영수도 그의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했었다. “너무 잘 됐어. 필요한 게 있다면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얘기하면 돼.” 조국철의 아내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고 저녁이 되자 그들은 나를 귀한 손님처럼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3층에 있는 가장 좋은 객실을 내어주었다. “왜 굳이 남아있으려는 거예요? 이 집에 누군가 손을 써뒀다는 거 알잖아요. 죽고 싶은 거예요?” 저녁을 먹고 객실로 돌아가자 조옥정이 화가 잔뜩 느껴지는 목소리로 내게 따져 물었다. “미안해. 나는 국철 아저씨를 꼭 구해야 해.” 나를 걱정하는 조옥정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말에 따르지 않은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정말로 꼭 그 사람을 구해야겠어요?” “응.”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알겠어요.” 조옥정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흔쾌히 대답했다. 나는 조국철을 구하겠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그를 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감도 오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먹었다면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 없으니까요. 제가 준 약을 먹었으니 조국철 씨는 당분간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로 조국철 씨를 구할 생각이라면 일단 이 집부터 조사해 봐야 해요.” 조옥정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나도 이 집에 누군가 손을 써놓은 것처럼 느껴지거든.” 오늘 낮, 나는 조국철의 가족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 왜 그들 중에서도 유독 조국철만 상황이 심각한 걸까? “이 옥패를 지니고 있어요. 밤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 이 옥패를 빼면 안 돼요. 그리고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이 방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조옥정은 잠깐 침묵하다가 갑자기 내게 당부했다. “어디로 가려는 거야?”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걱정하지 말아요. 최대한 빨리 돌아올 테니까요. 그리고 꼭 명심해요.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절대 이 방에서 나오면 안 돼요.” 조옥정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침대맡 서랍 위에 여자들이 가지고 다닐 법한 옥패가 하나 놓여 있었다. 심지어 옥패는 살짝 움직이기까지 했다. “같이 갈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아니요. 얼른 옥패를 몸에 지녀요. 그리고 늦었으니까 얼른 쉬어요.” 조옥정은 빠르게 거절했고, 서랍 위 옥패는 또 한 번 움직였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서랍 위에 놓여 있던 옥패를 목에 걸었다. 낮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나 같은 남자가 여자들이 하고 다닐 법한 옥패를 하고 있는 걸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다들 나를 놀렸을 것이다. “이건 네 옥패야?” 질문을 했지만 답은 얻지 못했다. 조옥정이 정말로 떠났는지 주변은 아주 조용했다. 나는 별장의 꼭대기 층에 있었고 그 층에는 객실만 있었다. 조국철의 가족들은 1층과 2층에서 지내고 있었다. 조옥정이 떠나자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나는 씻기도 귀찮아 바로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으나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였다. 조옥정이 했던 말처럼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잠결에 창밖에서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서 깼다. 거의 잠들 뻔했던 나는 비몽사몽 일어나 서랍 위에 놓인 시계를 힐끗 보았다. 벌써 12시 30분이었다. 순간 나는 잠기운이 많이 가셨다. 어렸을 때부터 산에서 컸기 때문에 까마귀 같은 것들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까마귀는 비교적 특별한 동물이었고 특히 이렇게 늦은 시간에 계속해 울어대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목에 걸고 있던 옥패를 만졌고 이상하게도 그걸 손에 쥐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별별 일들을 떠올려보니 그것들보다 더 최악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이불을 덮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래층에 있던 강아지도 짖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까마귀가 울어대는 소리가 밤의 고요함을 깨부쉈다. 심상치 않은 상황에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내가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창밖의 까마귀와 아래층에 있던 강아지 모두 조용해졌다. 그렇게 세상은 또 한 번 더없이 고요해졌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바짝 긴장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밖에서 바람이 불면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구세요?”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나는 바람에 문이 흔들렸는데 그 소리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놈아, 얼른 문 열어. 나야. 황영수.” “할아버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황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환청인가 싶어서 힘껏 고개를 저었다. “이놈아, 나야.” 곧 황영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문밖에서 들려왔다. 비록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황영수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 순간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 멈춰 서며 두려움을 느꼈다. 황영수는 나를 구하기 위해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했는데 혹시 스스로 알아서 도망쳐 나온 것일까? “할아버지, 정말 할아버지예요?” “이놈아,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 문밖에서 다시금 황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떤 순간에도 황영수의 목소리만큼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나는 곧장 문 앞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갑자기 목에 걸고 있던 옥패가 움직였고, 나는 화들짝 놀라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조옥정은 내게 오늘 무슨 일이 생기든 절대 방을 나서지 말라고 했다. 그 생각이 떠오른 나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대며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밖에 있는 사람이 황영수든 아니든 나는 절대 문을 열 수 없었다. 설사 문밖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황영수라고 해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목숨은 하나뿐이니 조금의 위험도 감수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내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황영수는 한동안 문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멈췄다. 마치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걸 예상한 듯이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창밖에서 다시 한번 바람이 불었다. 분명히 창문을 닫아놓고 있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침대에까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바람 때문에 방문이 쾅쾅거리면서 소리를 냈다. 나는 덜컥 겁이 나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바람에 방문이 부서질까 봐 말이다. 조국철이 사는 별장의 방문이 그 정도로 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매우 겁이 났을 뿐이다. 곧이어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바람 때문에 방문이 열리거나 부서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방문 아래로 흰색 연기가 들어왔고 그 연기는 눈이 달리기라도 한 듯이 천천히 침대 주위를 맴돌았다. 곧이어 나는 문밖에서 작은 발소리를 들었다. 당시 나는 겁에 질려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연기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설마 정말로 오늘 밤 이곳에서 죽는 걸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고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연기가 내 몸에 닿기 직전 바로 이불로 몸을 감쌌다. 예전에 황영수는 내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다른 좋은 방법이 없다면, 유일한 대처 방법은 바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이런 기괴한 일은 어렸을 때부터 황영수와 산속에 살면서 가끔 겪은 적이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깨서 물어볼 때면 황영수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며 나를 한바탕 혼냈다. 그러면서 그냥 꿈일 뿐이니 빨리 잊으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이불을 덮은 채 황영수가 어렸을 때 나를 혼내며 했던 말들을 떠올리니 왠지 모르게 별로 무섭지 않았다. 내가 경계를 점점 늦추고 있을 때 갑자기 귓가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도 더운데 그렇게 이불을 덮고 있으면 덥지 않아요?” 곧이어 누군가 이불을 잡아당기더니 이불 안으로 들어왔고 곧 그 사람은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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