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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흑장미로 돌변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 부른 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고작 바둑을 같이 두자는 요청이었다. 서아린이 내리 몇 판을 이기고 나자 배문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린아, 감히 나를 이겨 먹으려 드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구나.” 그 말에 서아린은 의아한 눈을 하고 서연오를 돌아보았다. 평생 적수가 없어 승리만 일삼아 오신 분인가 싶어 묻는 눈짓이었다. 서연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도 몇 번은 이겼잖아요.” 승부의 추가 기울어질 때마다 배문수는 바둑판을 쓱 문질러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는 무승부라 우겼었다. “언제 말이냐? 난 도통 기억이 없다만.” 배문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연회가 시작될 시간입니다.” “그래, 나간다.” 배문수는 바둑알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추스르더니 바둑판을 보물 다루듯 갈무리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서아린의 눈을 맞추며 한마디를 얹었다. “나는 말이다, 아첨하느라 일부러 져주는 놈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아린아,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둬야 한다. 봐주는 건 절대 안 된다.” 그제야 서아린은 노인의 속내를 읽어낼 수 있었다. 배림 그룹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선 이들은 저마다 잇속을 챙기려 바둑판 위에서도 제 마음을 숨기기 바빴을 것이다. 승부욕 강한 노인에게는 그 비굴한 패배들이 무척이나 지루했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수를 놓았던 서아린의 정직함이 오히려 그의 마음에 닿은 모양이었다. 서아린은 어릴 적부터 서창식 곁에서 바둑알을 만지며 자랐다. 곁눈질로 배운 솜씨가 제법 영특해져 이제는 웬만한 상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서연오조차 몇 번이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네, 할아버지. 그럴게요.” 처음 휴게실에 들어설 때만 해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서아린에게 배문수는 서연오를 따라 할아버지라고 부르라며 타박을 놓았었다. 입에 붙지 않아 머뭇거리던 호칭은 바둑 몇 판에 어느새 살갑고 다정하게 감겼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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