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다시 정상에
서강 그룹이 파산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따지고 보면 서씨 가문이 누군가를 건드렸는지, 정체 모를 상대에게 미움을 사 사업이 가혹하게 탄압받았기 때문이었다.
파산 이후 다시 일어서기는 했지만, 시대가 변한 데다 서아린의 아버지 서영진 곁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기에 끝내 예전의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서아린이 회사에 도착하자 프런트 직원이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그녀는 대답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오는 길에 이미 서영진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굳이 집에 들를 필요는 없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해서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서아린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영진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무리해 온 데다,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아직 5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지만 머리는 이미 희끗희끗해져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서아린은 목이 메었다.
“아빠...”
“아린이 왔구나, 어서 앉아.”
서영진은 노트북을 덮고 옆자리를 두드린 뒤, 커피를 내리러 일어섰다.
서아린이 옆에 앉으며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잠깐 있다가 갈 거예요.”
딸의 어두운 안색을 보자 서영진은 대충 짐작이 갔다.
“주씨 가문 사람들이 또 너를 괴롭혔어?”
그동안 서아린이 주씨 가문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서영진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몹시 자책했다.
“이게 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회사를 못 지킨 탓이야. 너도 괜히 도와준다고 주씨 가문에 시집가서 사람들의 냉대를 받게 되었잖아.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서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때 주민우와 결혼한 건 제 선택이었어요.”
사실 그녀는 주민우를 좋아했고, 늘 그와 결혼하길 기대해 왔다.
그래서 주씨 가문에서 먼저 혼인을 제안했을 때 기쁘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동안 주민우의 사업을 도와준 것도 주씨 가문이 서씨 가문에 힘을 보탠 데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했을 뿐이다.
다만 이 결혼이 함께 백년해로하는 결말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렇게 초라한 방식으로 끝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서영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되지만 않았어도 주씨 가문에서 너를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연오도 안 떠났을 거고... 이 모든 게 다 아버지 잘못이야.”
서연오를 언급하자 서아린의 마음이 아팠다.
“아직도 소식 없어요?”
서영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아무도 행방을 모르는구나.”
서아린은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오빠가 없더라도 제가 돌아와서 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제부터는 서씨 가문의 사업에 더 힘을 쏟아서 아버지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고 해요.”
서영진은 깜짝 놀랐다.
“그럼 주씨 가문 쪽은 어떻게 해?”
서아린은 그가 걱정할까 봐 주민우와 이혼할 생각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세븐힐 리조트 프로젝트만 따내면 당분간 저는 할 일이 없어요. 그때가 되면 여기에 신경 쓸 여유도 생길 거고요.”
서영진도 서아린이 돌아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에게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서아린은 늘 기특했다. 그동안 한 번도 걱정을 끼친 적이 없었고, 학창 시절의 성적이든 지금의 업무 능력이든 언제나 뛰어났다.
이는 또한 최순옥이 서아린을 손자며느리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서아린이 돌아온다면 그는 분명 서강 그룹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 어서 와.”
서영진이 두 팔을 벌렸다.
서아린은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속으로 말했다.
‘예전의 나 자신도,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해!’
서강 그룹을 떠난 후, 서아린은 바로 택시를 타고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임예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바로 술잔을 가득 채워주며 말했다.
“오늘 밤은 무슨 고민이 있든 다 잊어버려. 자, 마셔!”
서아린도 독한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결혼 후에는 금주했기에 지금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고 싶지 않았다.
임예나는 술만 마시는 건 재미없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방금 사장님이 오늘 새로 온 남자 모델이 몇 명 있다고 했어. 몸매랑 외모 죽여준다니까 얼른 가서 골라보자.”
서아린은 대답할 새도 없이 질질 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