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그가 술에 취했을 때, 서아라는 늘 그를 방까지 부축해 주었고 속이 불편하지 않도록 따뜻한 차를 끓여주곤 했다. 그가 집에 돌아와 밤을 보낼 때면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정성스럽게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차건우가 집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지민이 돌아온 이후로는 그는 거의 집에서 밤을 새우지 않았다. 차건우가 서아라와 아침 식사를 함께한 건 두세 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외의 날엔 늘 무슨 일로 바쁘다며 급히 나가버렸고 서아라가 공들여 차린 식사는 제대로 입에 대보지도 못한 채 식탁 위에 남겨졌다. 그는 그녀의 실망이나 우울함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기억들이 이제 와서 선명하게 떠올라 차건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초조함이 가슴을 조여왔고 그는 본능적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숨이 더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샤워를 마친 차건우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서아라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가 이불을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불은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강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소파도 크긴 했지만 그의 큰 키 때문인지 그가 누우면 어딘가 좁아 보였다. 서아라는 자신이 널찍하게 차지한 침대와 약간 비좁아 보이는 소파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차건우를 걱정하는 마음은 결국 불행의 시작일 뿐이라며 자신을 다그쳤다. 침대 머리맡 조명이 꺼지고 방은 조용한 어둠에 잠겼다. 서아라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좀처럼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결혼한 지는 3년이 지났지만 따로 지낸 건 이제 겨우 두 달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아라는 여전히 차건우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 차건우가 집에 돌아오면 그에게 전화가 걸려 오지 않기를 조용히 빌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히려 하지민에게 불려 가길 바라게 되었다. 최근 들어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