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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비행기는 런던 히스로 공항 활주로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창가에 붙어 고개를 돌리자, 바깥에는 런던다운 잿빛 하늘 아래 가는 빗줄기가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었다. 묘하게도 그 풍경이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사람들 틈을 따라 걸어 나오다가,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단정한 진회색 코트를 입고 검은 우산을 손에 들고, 하얀 머리를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게 빗어 넘긴 노인이었다. “할아버지!” 나도 모르게 목이 멘 채로 그 말을 불쑥 내뱉으며,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급히 헤집고 나아갔다. 내 목소리를 들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 낸 듯한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고 깊었다. 나를 알아보는 순간, 굳어 있던 이목구비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고, 숨길 수 없는 반가움과 애틋함이 얼굴에 번져 나왔다. 할아버지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와 두 팔을 벌리셨다. “우리 아가야...” 조금 쉰 듯한 노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든든했다. 나는 거의 달려들듯 그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 옷깃에서 익숙한 담배와 오래된 책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올라왔다. 오랫동안 내 마음을 붙잡아 주던 바로 그 향기였다. 그제야 지금껏 꾹 눌러 참고 있던 서러운 마음, 지친 마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와 뜨거운 눈물이 되어 할아버지 코트 앞자락을 금방 적셔 버렸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다만 어깨가 조용히 흔들릴 만큼만 가볍게 훌쩍였다. 지난 몇 달 동안 쌓이고 쌓였던 모든 고통을 이 무언의 포옹 속에서 조금씩 흘려보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넓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천천히, 여러 번 쓸어 주셨다. 내가 어릴 적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마다 늘 이렇게 등을 쓸어 주시고는 했다. 한참 뒤에서야 할아버지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애틋함과 미안함이 다 뒤섞여 있었다. “고생 많았어. 우리 손녀, 다 할아버지 잘못이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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