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공항을 빠져나온 차는 빗물에 젖은 런던 거리를 달렸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창밖 풍경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설명해 주었다.
“저기 보이지? 저기가 템스강이야. 날씨 좋아지면, 할아버지가 런던아이도 태워 줄게.”
“지금 여기가 켄싱턴구고, 우리 집이 바로 근처야. 동네가 꽤 한적한 편이지.”
“저쪽은 하이드파크야. 나중에 아침에 운동하고 싶으면 거기 가면 돼. 공기도 아주 좋아...”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사의 숨을 품은 건물들이 차창 옆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지나갔고, 가지런히 늘어선 빨간 공중전화 부스들, 단정한 옷차림으로 바삐 오가는 사람들까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모든 것은 예전에 내가 지내던 숨 막히는 억압과 배신, 고통으로 가득한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잔잔한 영국 특유의 분위기와 할아버지의 온화한 목소리 속에서 구겨져 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펴져 가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집은 한적한 골목 가에 자리한 3층짜리 연립 주택이었다.
외벽은 고전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고, 앞마당에는 작지만 잘 손질된 정원이 붙어 있었다.
“다 왔어. 여기야.”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은 넓고 밝았고, 안쪽은 전형적인 영국식 고전 인테리어였다.
짙은 색 나무 가구와 따뜻한 벽난로, 벽마다 걸린 수채화들이 어우러져 집 안 전체가 차분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네 방은 2층이야. 작은 개인 발코니도 있고. 내가 미리 정리해 두었는데, 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
할아버지가 직접 나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하얀 방문을 열었다.
방은 제법 넓었고, 비 오는 날인데도 놀랄 만큼 밝고 탁 트여 보였다.
폭신한 카펫 위에는 보라색 공주 침대와 같은 계열의 화장대, 옷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창가에는 편안해 보이는 1인용 소파와 작은 티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발코니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빗줄기 지나간 뒤의 풀 냄새와 흙 냄새가 섞인 산뜻한 바람이 방 안으로 부드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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