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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한서준이었다. 에디는 사정을 전혀 모른 채 여전히 신이 나서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만 했고 목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나는 한서준을 알아본 바로 그 순간, 심장이 본능적으로 먼저 한 번 움찔했다. 그러나 그 감각은 곧 거대한 피로감과 싸늘한 감정에 덮여 사라졌다. 저 초라한 꼴을 하고 서 있는 한서준을 바라보면서도, 한서준이 기대했을 법한 연민이나 흔들림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역시나. 그래. 한서준, 화려한 신분과 재산을 잃고 나면, 너도 결국 이 정도일 뿐이구나.’ 비를 맞으면 젖고, 길 위에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나는 에디의 목줄을 살짝 당겼다. 걸음을 멈추지도, 서둘러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길 가장자리에 불쑥 놓인 장애물을 돌아가듯 활기찬 내 강아지를 데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집 문 쪽으로, 그리고 그 앞을 막고 서 있는 한서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제야 한서준이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동자 속에서 섬뜩할 만큼 뜨거운 빛이 번쩍하고 터져 나왔다. 한서준은 거의 손짓발짓까지 다 써 가며 허둥지둥 일어나더니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린아, 하린아! 드디어... 드디어 널 찾았구나.” 한서준의 갈리진 목소리에는 울음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봐, 나 지금 가진 거 하나도 없어. 이게 다 내 업보야. 예전처럼... 그때처럼 널 대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괜히 마음이 흔들려서, 정초아한테 눈이 멀어서...” 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고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한서준이 다가오려 할 때, 에디의 목줄을 살짝 옆으로 끌어당겨 한 걸음 비켜섰을 뿐이었다. 난 그저 한서준과 차분하게 선을 그었다. 에디는 묘한 긴장감을 느꼈는지 낮게 으르렁거리며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한서준 씨.” 나는 한서준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는 날씨 이야기나 하듯 담담했다. “이런 말들은 이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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