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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임지현은 육현재가 사람들 사이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응대하는 틈을 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적이던 실내를 등지고 나서자, 텅 빈 테라스가 펼쳐졌다. 밤바람이 스치듯 지나갔을 뿐인데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타들어 가는 속을 달래듯,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담배 끝이 가늘게 떨렸다.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시자, 담뱃불이 순간 환하게 밝아지며 창백한 그녀의 입술을 붉게 비췄다. 잠시 뒤에야 희뿌연 연기가 천천히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니코틴은 불안을 잠시 가라앉혔을 뿐이었다. 차갑게 굳은 손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초조한 기다림 속에서 시간은 평소보다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구두 굽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임지현은 급히 몸을 돌렸지만 얼굴이 굳어진 채로 선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가온 이는 고서원이 아니라 육현재였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실리자 가느다란 담배가 부러질 듯 꺾였다. ‘왜 육현재가 온 거지? 직원이 귀걸이를 전하지 못한 건가? 내 부탁을 전하지 못한 거야?’ 혼란이 밀려드는 와중에 그녀는 시야에 고서원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커튼 옆에 선 남자는 갈색 수제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그 구두는 그녀가 고서원에게 직접 골라 주었던 선물이었다. 그는 육현재보다 한발 늦게 찾아왔다. “여기서 혼자 뭐 해?” 육현재가 다가오며 물었다. 이번에도 감정이 읽히지 않는 목소리였다. “누굴 기다리는 거지?”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의 동선을 확인했다. 임지현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날 찾아낸 거지? 이 연회장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눈을 심어 둔 거야.’ 공포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고서원이 지금 모습을 드러낸다면 두 사람 모두 벼랑 끝에 몰릴 터였다. 임지현은 억지로 평정을 되찾았다. 고개를 들고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걸고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어조로 말했다. “애인 기다리는 중이었어. 안 돼?” “오늘 컨셉은 장난꾸러기야?” 육현재가 낮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그녀의 손끝에서 희미하게 밝아졌다 꺼지는 담배에 머물렀다. “또 피우는 거야?”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든 반 토막짜리 담배를 빼앗으려 했다. 임지현은 손목을 틀어 가볍게 피해 냈다. “육현재, 도대체 어디까지 간섭할 거야?” 임지현은 일부러 톤을 끌어올렸다. 말끝에는 계산된 애교와 노골적인 도발이 섞여 있었다. “나랑 이윤이를 납치하듯 가둬놓더니, 이젠 담배 한 대 피울 자유도 안 주는 거야?” “지현아,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순간, 커튼 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구슬 장식 술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잔잔한 마찰음이었다. “누구야?” 육현재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임지현은 심장이 움찔했지만 용기를 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담배꽁초를 옆의 와인잔에 던져 넣었다. 타오르던 불씨가 남은 레드 와인에 닿으며 ‘치익’ 소리를 냈고 곧 푸른 연기 한 줄기로 변해 사라졌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두 팔을 들어 육현재의 목을 감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입안에 머금고 있던 연기를 그의 얼굴에 천천히 뿜어냈다.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술기운이 번진 붉은 뺨과 흔들리는 눈빛은 농염한 기색이 흘러넘쳤다. 육현재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 호흡이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그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듯,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뜨겁고 집요한 키스가 이어졌다. 입술에서 목덜미로, 다시 쇄골로 천천히 내려가며 여운을 남겼다. 임지현은 그가 정신없이 몰두한 사이, 그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커튼 뒤에 어른거리던 그림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서원 씨는 갔어. 부디 내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기를.’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이윤이를 육현재의 손아귀에서 떼어 놓아야 했다.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육현재는 임지현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차 안에서 임지현은 창가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고 의도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육현재는 그녀의 차가운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금 전 테라스에서 그녀가 먼저 유혹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도대체 내가 모르는 모습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그가 몸을 기울여 다가오자 임지현은 즉각 그를 밀어냈다. “다시 내 몸에 손대면 지금 문 열고 뛰어내릴 거야.” 이미 손은 문손잡이에 얹혀 있었고 말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육현재는 잠시 멈칫했다. “그래. 안 다가갈게.” 물러서며 말했지만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는 네가 더 적극적이었잖아.” 임지현은 그를 노려봤다.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처음부터 서원 씨가 올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 그래서 일부러 데려간 거잖아. 그 사람 앞에서 나를 형편없는 여자로 보이게 하려고.” “맞아. 알고 있었어.” 육현재의 목소리도 차갑게 식어 있었고 감정이 상한 기색이 섞였다. “왜? 그 자식 앞에 서는 게 어려운 일이야?” “너는 네 기분만 중요하지. 내가 어떤 기분일지는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난 네가 남 찌르려고 손에 쥔 칼이 됐어.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고 하겠어? 내가 헤픈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게 네가 원하던 거야?” 임지현은 더는 참지 않았다. 오래도록 쌓아 온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임지현이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던 육현재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차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임지현은 끝까지 창밖만 봤고 육현재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차가 청운재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가 멈추자마자, 육현재는 반대편으로 돌아가 문을 열었지만 임지현은 그를 무시했다. 그러나 임지현의 말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육현재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이거 놔!” 임지현이 거칠게 몸부림쳤지만 육현재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대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연회 내내 억눌러 왔던 욕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육현재는 망설임 없이 입을 맞췄다. 이마에서 코끝으로, 뺨을 거쳐 끝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임지현은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육현재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귀로 향했다. “귀걸이 한쪽은 어디 갔어?” 임지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귀를 가렸다. “잃... 잃어버렸나 봐.” 육현재는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먼저 씻어.” 그는 그대로 방을 나섰고, 곧장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10분 내로 연회장 CCTV 전부 확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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