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임지현은 하루 종일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가슴 한쪽이 텅 비어 있는 듯한 공허한 기분이 들어 1층 정원으로 내려갔다.
평소라면 낮잠에서 막 깬 아이가 도우미의 손을 잡고 미끄럼틀을 타거나 모래를 파며 촉감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정원은 텅 비어 있었고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임지현은 순간 심장이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한 작은 그림자가 달려 나와 품에 안길지 모른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지만 방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침대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본 뒤로 이윤이는 집에 머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임지현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혹시 잠깐 외출한 사이, 누군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 것은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예고 없이 사라진 아이가 다시 돌아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임지현은 평소 이윤이를 데리고 놀던 도우미 강려원을 붙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려원 씨, 이윤이 어디 있어요?”
강려원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임지현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연달아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모두 같았다. 이 넓은 저택 안에서 아무도 아이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육현재는 어디 있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육현재뿐이야.’
“대표님은 서재에 계십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임지현은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곧장 2층 서재로 향했다. 예의 따위는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대로 밀어젖혔다.
“육현재, 이윤이를 어디에 숨겼어?”
육현재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 나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임지현 앞까지 다가온 뒤,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들어 올렸다.
“임지현, 마지막으로 물을게. 네 귀걸이... 정말 잃어버린 거야? 아니면 누구한테 준 거야.”
그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상 마주하니 더 섬뜩했다. 그야말로 피할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눈빛이었다.
임지현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서원 씨를 만난 적은 없는데... 육현재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정말 잃어버린 거야. 귀걸이 하나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잖아. 고작 귀걸이 하나 잃어버렸다고 이러는 거야? 얼마나 한다고...”
화제를 돌리려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흔들림이 섞여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육현재가 비웃듯 다시 물었다.
“잃어버린 거라면 그 귀걸이는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고서원 손에 들어가 있지? 우연이야? 아니면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이야?”
임지현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육현재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확신에 찬 말투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이 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임지현은 숨을 고르고 끝까지 잡아뗐다.
“난 몰라. 왜 귀걸이가 서원 씨 손에 있는지는 나 말고 서원 씨한테 직접 물어봐.”
육현재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의 시선은 단 1초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임지현은 숨이 막히는 압박 속에서,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이대로라면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 마디라도 잘못 내뱉는 순간 이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도
함께 사라질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줘. 그러면 이윤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차갑게 식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육현재, 그거 알아? 너 정말 역겨워.”
날카로운 말을 내뱉었지만 가슴은 미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임지현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했다.
“그래, 내가 일부러 서원 씨한테 준 거야.”
“왜 그렇게 했지?”
육현재의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왜 그 자식한테 귀걸이를 줬는지 말해 보라고!”
임지현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힘을 실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육현재를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보고 싶게 만들려고 했어. 서원 씨가 나를 쉽게 잊지 못하게.”
“임지현!”
역시나 그 한마디에 육현재는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는 손을 뻗어 가느다란 임지현의 목을 힘껏 움켜잡았다.
임지현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고 숨이 막혀왔다. 이내 시야가 흔들리며 어두워졌다.
“그래... 차라리 죽여 줘...”
끊기는 숨결 사이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원한다면!”
육현재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핏줄이 선명하게 두드러졌던 손은 끝내 힘이 풀리고 말았다.
임지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막혀 오자, 더는 버틸 힘이 없다는 판단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의식이 흐려지려는 순간, 그녀의 목을 죄던 손이 갑자기 풀렸다.
육현재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 책상 쪽으로 내몰았다.
팔이 스치며 책상 위의 서류와 펜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날카로운 소음이 방 안을 가르며 흩어졌다.
그러나 육현재는 어질러진 바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곧장 임지현을 차가운 책상 위로 밀쳤다.
임지현의 뺨이 테이블 표면에 닿았다. 그녀는 몸이 굳은 채로 제압당하고 말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임지현이 몸부림쳤다. 이토록 노골적인 굴욕은 처음이었다.
대답 대신 들려온 건, 천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치맛단이 난폭하게 찢기며 다리가 그대로 드러났고 냉기가 척추를 타고 스며들었다.
육현재는 그 무례한 방식으로, 그녀가 자신의 것임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임지현, 똑똑히 들어.”
그는 상체를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너는 내 거야. 이번 생은 내 곁을 떠날 생각 하지 마.”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응징처럼 들이닥친 입맞춤이 숨을 틀어막았다.
허벅지가 책상 끝에 걸리며 통증이 번졌지만, 그 고통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미미했다.
폭풍 같은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체감은 마치 영원에 가까웠다.
침묵이 찾아오고 그가 떠난 뒤,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책상 아래에 주저앉았다.
시야에 들어온 건, 책상 모서리에 짓눌려 남은 붉은 자국이었다. 살이 패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눈물과 땀이 뒤엉켜 바닥 위로 떨어졌다.
육현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끝의 붉은 빛이 어둠 속에서 숨 쉬듯 깜박였고 담배 연기는 그의 냉담한 표정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콜록...”
짙은 담배 냄새가 목을 찌르자, 임지현은 숨을 고르지 못하고 연달아 기침을 쏟아냈다. 가느다란 어깨를 위태롭게 떨렸다.
그는 손가락 사이의 담배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말없이 재떨이에 비벼 껐다. 곧바로 창문을 열자, 밤바람이 밀려들며 방 안에 가득 찼던 연기를 씻어냈다.
그는 돌아서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쌓여 있던 분노를 풀 곳이 없던 임지현은 주먹을 움켜쥔 채, 그의 가슴을 몇 차례 세게 두드렸다.
그러나 육현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서재를 빠져나와 곧장 욕실로 향했고 욕조 앞에서 그녀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욕조 표면이 피부에 닿자, 임지현은 순간 움찔했다.
“내가 도와줄까, 아니면 혼자 씻을래?”
말투는 부드러워진 듯했지만 여전히 일방적이었다.
임지현은 분노 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찢긴 원피스를 천천히 벗었다.
“아까는... 내가 너무 충동적이었어.”
육현재가 나지막이 사과했다.
그는 샤워기 물 온도를 한 번 더 확인하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로 물줄기를 흘려보냈다.
“이윤이는... 어디 있어?”
임지현이 물었다.
“잘 지내고 있어. 단기 여름 캠프에 보냈어. 지금쯤 다른 아이들이랑 잘 놀고 있을 거야.”
임지현은 갑자기 샤워기를 낚아챘다.
물줄기가 튀며 육현재의 셔츠 앞자락을 순식간에 적셨다.
“이윤이는 내 아들이야.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아무 말도 없이 데려가지 마. 또 그러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경고였다.
“알겠어.”
“이제 나가!”
임지현이 샤워기 물줄기를 그에게 겨눴다.
물살이 얼굴로 쏟아지자 육현재는 몇 걸음 물러나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