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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윤이는 귀여운 얼굴을 번쩍 들고 눈앞의 어른을 올려다봤다. 김다올의 아빠, 김준하는 아이의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아저씨, 저예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는 겁먹은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 빨리 혼내주세요!” 옆에서 김다올이 발을 동동 굴렀다. 머뭇거리는 아빠의 행동이 답답한 듯 보였다. 김준하는 한 손으로 김다올을 안은 채, 다른 손으로 이윤이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마치 이윤이의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 이윤이는 순간 심장이 조여 왔다. 두려움이 없을 리는 없었다. 다만 다른 아이들처럼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다. 이윤이는 코끝만 살짝 훌쩍였다. “아저씨, 저는 그냥 어린아이잖아요. 아저씨 같은 어른이 저 같은 꼬마를 괴롭히면 남들 보기에 좀 그렇지 않을까요?” 차분한 말투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 그 말에 김준하는 순간 손에 힘을 풀었다. ‘이 꼬마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아빠! 빨리 혼내주라니까요!” 상황을 전혀 읽지 못한 김다올은 여전히 투정 부리듯 소리를 질렀다. 결국 김준하는 주먹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이윤이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캠프 교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어른이잖아. 자기 아들이랑 비슷한 또래의 애한테 손찌검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김준하는 아들을 달랬다. 하지만 김다올은 들을 생각조차 없었기에 단번에 울음을 터뜨리며 떼를 썼다. “싫어요! 빨리 복수해 주세요, 아빠! 아빠가 혼내주기로 했잖아요!” 김준하의 미간이 점점 깊어졌다. 그때 이윤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눈앞의 아저씨가 끝내 김다올의 성화를 못 이기고 손을 쓰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이윤이는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건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이윤이는 김다올을 똑바로 바라봤다. “김다올, 나랑 제대로 붙어볼래? 사내대장부답게 나랑 겨뤄볼 용기 있어?”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을 흉내 낸 말투였다. 분유도 막 떼었을 법한 얼굴로 진지한 척하는 모습이 묘하게 우스웠다. “들었지, 아들?” 김준하가 흥미로운 듯 웃으며 말했다. “도전장을 받았으니 남자답게 응해야지.” 이윤이 같은 아이는 처음 보는 터라, 이미연은 잠시 멍해졌다. 이렇게까지 상황을 뒤집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우리 다올이가 덩치는 더 크니까... 손해 볼 일은 없겠지.’ “괜찮아, 아들.” 이미연도 맞장구쳤다. “엄마랑 아빠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감히 얕잡아보게 두면 안 돼.” 응원을 등에 업은 김다올은 금세 기세가 살아났다. 아이는 어깨를 펴고 이윤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이 움직이기에는 공간이 좁았던 터라, 어른들은 자연스레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섰다. 캠프 교사들과 아이들의 부모님, 그리고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둘러싼 가운데 김다올과 이윤이는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맞붙었다. 처음엔 모두가 김다올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반응 속도도, 몸놀림도 이윤이가 한 수 위였다. 몇 번 지나지 않아 김다올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김다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그의 부모는 얼굴이 굳었다. 김준하는 순간 이성을 잃고 이윤이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뜬 순간 이윤이의 시야에 낯익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육현재였다. 그는 김준하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김준하가 힘껏 날린 주먹은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이윤아! 엄마가 너무 늦었지?” 이윤이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엄마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엄마!” 이윤이는 그대로 임지현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 순간 꾹 눌러 두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가늘게 떨리는 숨결과 그녀의 목에 꼭 매달린 팔은 모든 상황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저기요, 누군데 참견입니까?” 김준하는 여전히 육현재에게 손목이 붙들린 채 씩씩대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불만이 드러나 있었다. 두 사람은 덩치부터 달랐다. 김준하는 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지만 넓은 어깨와 두툼한 골격, 육중한 체격을 숨길 수 없었다. 반면 육현재는 훤칠하고 날씬한 편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체구가 작지 않았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김준하는 자신보다 한 체급은 작아 보이는 육현재를 흘겨봤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눈빛이었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육현재의 목소리는 허스키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듯 들렸으나, 그의 말을 끝까지 듣게 만드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다만 손에 힘도 제대로 실을 줄 모르는 세 살짜리 아이에게 주먹을 휘두르려 한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인데요?” “그게 당신이 상관할 일입니까!” 김준하가 거칠게 몸을 비틀었고 두툼한 입술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육현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조여 들었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힘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김준하는 손목뼈가 짓눌리는 느낌에 숨을 들이켰다. 마치 쇠로 된 집게에 끼인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 아파... 잠깐만!” 그제야 김준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겉보기와 달리, 육현재의 손아귀가 이렇게 단단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육현재는 피식 웃음을 보이며 손을 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물티슈 한 장을 꺼내더니, 조금 전 김준하의 손목을 붙잡았던 손을 천천히 닦았다.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까지 빠짐없이 닦는 모습은 마치 불결한 것을 만진 듯해 보였다. “이 아이에게 손을 대려 한 순간부터 그건 제가 참견해야 할 일이 됩니다.” 육현재는 손을 닦아낸 물티슈를 접어 가볍게 던졌다. 예상대로 휴지통 안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저는 이윤이의 보호자니까요.” “뭐라고요? 당신이 이 아이 아버지라는 겁니까?” 김준하가 비아냥대며 물었다. 육현재는 굳이 부정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더 말할 가치가 없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준하는 붉어진 손목을 문지르며 다시 시비를 걸었다. “당신 아들이 우리 아들을 때린 건 사실 아닙니까?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육현재의 시선이 임지현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이윤이에게로 향했다. “네가 먼저 때린 거야?” “네...” 이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눈동자에는 두려움 대신 당돌함이 어려 있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숨기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이윤이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육현재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저 눈빛은... 어릴 적의 나를 똑 닮았네? 쉽게 울음을 터뜨리던 고서원 그 자식과는 전혀 닮지 않았어. 저 묘하게 고집스러운 눈빛 좀 봐...’ “이윤아.” 임지현이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녀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손으로 아이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 “먼저 친구를 때린 건 옳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유 없이 맞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 줄래?” 캠프 교사의 보충 설명과 함께 화장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차분히 정리됐다. 두 아이와 보호자들은 말없이 끝까지 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상황은 충분히 분명해져 있었다. 이윤이의 행동은 괜한 시비가 아니었다. 임지현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이윤이 옆에 보호자가 없다고 생각해서 아이들끼리 한판 붙으라고 몰아붙인 겁니까?” 평소의 온화한 인상은 사라졌고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를 지키려는 기색이 너무도 분명해 주변 사람들마저 순간 말을 잃었다. “그게 아니라요.” 이미연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애들끼리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무슨... 요즘 애들 다 그렇게 놀잖아요.” “장난이요?” 임지현이 한발 다가섰다. 손끝이 상대의 얼굴 가까이 올라갔다. “부부가 나서서 세 살 아이 하나를 상대로 일을 키운 게 장난입니까? 부끄러운 줄은 아세요?” “나쁜 아줌마!” 갑자기 작은 주먹 하나가 임지현의 다리를 세게 내리쳤다. 김다올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우리 아빠는 안성 그룹 지사 총괄이사예요! 다 잘리고 싶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현재의 손이 뻗었다. 그는 김다올이 휘두르던 손목을 정확히 붙잡았다. 그대로 단호하게 아이를 임지현 곁에서 떼어내 김준하 쪽으로 밀어냈다. 그의 여자였다. 상대가 어린아이라 해도 그는 한 치의 무례도 허용하지 않았다. 김다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말이었다. ‘이 정도면 성악설을 믿어야 하나?’ “안성 그룹이요?” 임지현이 고개를 돌려 육현재를 바라봤다. “육 대표님, 아시는 분이에요?” 육현재는 그야말로 가만히 서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곧장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은 이례적으로 진지했다. “지현아, 우리 안성 그룹에 저런 인간은 없어.” “너 뭐야?” 김준하가 모욕을 느꼈는지 곧바로 날을 세웠다. 그러나 육현재는 그를 아예 시야에서 지웠다. 마치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했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오직 하나였다. 그를 쏘아보는 임지현의 서늘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육현재가 일부러 꾸민 일인 것이라고 오해하는 듯했다. 육현재의 속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그는 얼굴을 굳힌 채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비서에게 전화를 거는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1분 줄게. 지금 당장 내 앞으로 와.” 차에서 졸고 있던 유동욱은 그 목소리에 그대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물을 끼얹은 듯 온몸이 굳었다. 귓가를 울리는 한마디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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