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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그러니 거짓말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입을 열지 않는 게 나았다. 송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천천히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다. “원우 씨, 사실은 박서준 씨가 절 협박했어요. 김씨 가문과 기명 그룹의 프로젝트 협상이 잘 안되면 제 그림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 송서아는 간단히만 사정을 설명했고 굳이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그림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말하지도 않았다. 이유가 있든, 사정이 있든, 남을 이용하는 건 결국 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반발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서아는 김원우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받아들일 각오를 했다. 그러나 그가 보인 반응은 단지 살짝 찌푸려진 미간뿐이었다. “알겠어. 그림은 내가 가정부한테 서재 금고에 넣어두라고 했어. 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 짧은 한마디였지만 송서아는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 그림은 제 작품이니까 값어치도 없는 건데... 굳이 금고에 넣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제 생일은 어떻게 안 거예요?” 김원우는 태연히 대답했다. “네 작품이니까 금고에 넣은 거야. 네 생일은 비밀도 아니잖아. 송서아, 난 네 생각보다 널 잘 알아.” 송서아는 멍해졌다. 하긴, 김씨 가문에서 아무 여자나 함부로 받아들일 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든, 결국 김씨 가문의 가족이 될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조사는 당연한 일. 그러니 생일 정도야 기본이었을 터였다. 그녀가 이제 막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최애라였다. 조용한 식탁 위, 김원우 역시 통화 내용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송서아, 너 또 김씨 저택에 있니? 너 정말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랑 원우의 결혼식이 코앞인데 3일에 한 번꼴로 그 집에 드나든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김씨 가문의 친척들이 뭐라 하겠니?” 송서아는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깊은숨을 들이마셨지만 마땅히 할 변명은 떠오르지 않았다.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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