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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허가윤은 송서아가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좋지만 절대 방심할 수는 없었다. 허가윤은 푼수가 아닌지라 이참에 병원에 돌아가지 않고 박씨 저택에 머물기로 했다. 이 집안 모두가 그녀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그에 비해 송서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 집을 떠날 테니까. 이제 송씨 일가에서 자신을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애초에 송정호와 최애라가 활짝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박씨 저택에 보냈으니 이제 떠날 때도 당당하게 떠날 것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박유준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늘 송서아에게 말을 걸려고 시도했다. 지난번 일을 겪은 후, 송서아는 박유준을 마치 역병처럼 피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곧 떠날 예정이니 더 이상 어떤 소란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박유준이 작정하고 다가오니 그녀도 피할 수가 없었다. 박씨 저택의 정원에서 이 남자가 불쑥 그녀의 등 뒤에 나타나더니 손목을 잡았다. “가윤이가 그러는데 제수씨 친정으로 돌아간다고요?” 가윤이? 참으로 다정한 호칭이었다. 혹시 침대에서 습관처럼 부르다 보니 이제 남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걸까? 송서아는 극도로 혐오감을 느끼며 박유준의 손을 뿌리쳤다. “제가 친정으로 돌아가든 말든 아주버님이랑 뭔 상관이죠?” 그녀는 의도적으로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을 강조하며 그가 이제 허가윤의 남편임을 상기시켰다. ‘아주버님’이라는 네 글자가 박유준의 심장을 쿡 찔렀다. 그는 송서아의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둘은 결국 정원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하필 그 광경은 2층 침실 발코니에 서 있던 허가윤의 눈에 포착되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가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허가윤은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 “송서아! 갈 데까지 가보겠다 이거야?” 정원에서 박유준은 초조하게 송서아를 붙잡았다. 그녀가 이 집에 계속 머문다면 모든 행동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절대 송씨 일가로 보낼 수 없다. 그건 너무 위험하니까. “왜 저랑 상관이 없어요? 유준이가 죽은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걔가 두 눈을 감을 수나 있겠어요?” 송서아는 차갑게 웃었다. “그래요? 박유준이 정말 죽었다고 생각해요?” 박유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잠시 후,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남원 추모 공원에 묻혀 있으니... 당연히 죽었죠 그럼...” 송서아는 박유준의 손을 뿌리쳤다. “이미 가고 없는 사람이니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단호하게 떠나가는 송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유준은 가슴을 쿡 찌르듯 아팠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고 그녀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기를 맡으면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만약 이번 일로 형 박서준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와 송서아는 경원의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되었을 터였다. 박유준은 사라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서아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아이만 무사히 태어나면 다시 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송서아는 침실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팔이 빨갛게 될 때까지 문질렀다. 박유준의 손길이 닿았던 곳은 모두 역겹게 느껴졌다. 샤워를 막 끝냈을 때, 문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송서아가 잠옷을 입고 문을 열자 박유준과 허가윤이 양옆에 서 있었다. 허가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자 그제야 박유준이 입을 열었다. “제수씨, 짐 정리해요. 제가 송씨 저택까지 바래다줄게요.” 송서아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남자의 태도가 너무 빨리 바뀌었으니까. 좀 전에 정원에서 대화했을 때랑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한편 허가윤은 위너가 된 듯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송서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짐 정리를 시작했다. 원래 송씨 일가에서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집을 미리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허가윤이 상냥하게 말했다.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요, 동서. 그래도 지금은 제 배 속의 아이가 가장 중요하니 집안이 좀 더 조용해지면 저도 아이한테도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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