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3화
박은영은 무심결에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같은 자리에 자신까지 와 있는 데다 이런 상황에서 마주치는 건 영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태진의 속뜻은 따지지 않았다. 곧장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어차피 지금 곤란해질 사람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막 계단참에 닿았을 때, 거실에 앉아 있던 이금희가 싸늘하게 지시했다.
“아무나 들여보내? 안 나가면 그냥 기다리게 해.”
평소엔 온화했지만 일에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정 봐주는 일도 없었다.
옆자리의 이효정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고 입도 떼지 않았다. 이제 와 보니 서연주는 이미 완패였다. 그녀 눈에는 큰일을 맡길 그릇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박은영이 내려오는 걸 보자, 이효정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에 미묘한 빛이 스쳤다.
그렇게 확실한 패를 몇 년 동안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다니, 보통 배짱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자신이 광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놀라움과 함께 원망과 분노가 뒤섞였다.
박은영... 처음부터 우릴 갖고 논 건 아니지?
이금희가 손짓했다.
“은영아, 밥 먹자.”
문밖 사람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박은영도 모른 체하며 자리에 앉았다. 여긴 어디까지나 유씨 가문의 집이었고 집안사람의 태도가 이렇다면 자신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마침 뒤에서 유태진도 나왔다. 그는 이금희의 방식에 개의치 않는 듯했고 곧장 박은영 곁으로 와 눈을 맞추더니 짧게 말했다.
“가자.”
박은영은 순간 놀랐다.
빗속에 서연주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침착하다니.
그녀는 잠깐 주춤했다. 점점 더 이상했다.
이 사실은 유나연도 알고 있었다.
오래 지내서인지 어쩐지 불편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낮췄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오빠... 안쓰럽지 않아요?”
이금희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눈치였다.
유태진은 스치듯 눈길만 주고 담담히 말했다.
“먹기 싫으면 먼저 가.”
유나연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박은영의 능력이 떠오르자 억지로 삼켰다. 이 타이밍에 박은영 기분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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