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7화
박은영은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마침내 가해자이자 그 덕을 본 사람의 입에서 사과의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상황 때문에 억지로 내뱉은 말이긴 하겠지만.
하지만 서연주 같은 자존심 강한 여자가 무릎 꿇고 굴욕을 삼켜야 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벌일 것이다.
명예와 부를 잃은 것뿐만 아니라 무너진 자존심과 찢긴 정신이 그녀의 삶을 갉아먹을 것이다.
박은영은 서연주의 얼굴에 스친 원망과 왜곡된 분노를 애써 못 본 척했다.
그녀가 곁에 선 유태진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서연주는 떠나지 못해. 자기가 저지른 일은 책임져야지.”
그 말에 서연주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내게 뭘 더 바라는 거야!!!”
수치를 견디며 무릎까지 꿇었건만 왜 끝내 숨통을 끊으려 하냐, 이거였다.
박은영은 그 말에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답을 내린 그녀는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탔다.
서연주는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
이곳에 남아 있어 봤자 그녀에게 주어지는 건 죽음뿐이었다.
서연주가 마지막으로 유태진을 향해 애원했다.
“태진 씨, 아까 태진 씨가 분명 말했잖아. 내가 사과하면...….”
남자의 눈매가 아래로 드리웠다.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그림자 사이로 한 줄기 한기가 번졌다.
“네가 떠나기 전에 이런 짓을 꾸민 게 아니었다면 내가 무슨 이유로 널 만나야 하지.”
서연주는 망연자실해졌다.
유태진의 입에서 이렇게 잔인한 말이 흘러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늘 차분하고 절제된 품격 있는 남자가 이제 비수 같은 말로 그녀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강지환이 곁눈질로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유태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미리 대비해 온 상황이라 하더라도, 박은영이 다치지 않았더라도 유태진은 서연주와 허윤정의 시도만으로도 분노했을 것이다.
서연주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가, 그녀가 쏟아낸 모든 애정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 이토록 차갑게 돌아올 줄이야.
“태진 씨는...… 단 한 순간도 날 좋아한 적이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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