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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심은지는 그녀의 독설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아니, 틀렸어. 첫째, 강우빈은 내가 버린 거야. 둘째, 강은우가 너를 좋아하고 나를 싫어한다? 그게 뭐 어쨌다고. 난 전혀 신경 안 써.” 그녀는 그 말을 내뱉은 뒤, CCTV 화면을 확인하며 직원에게 지시했다. “보안팀을 부르세요. 2층은 사적인 구역이에요. 관계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그 후, 그녀는 한서연을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분명 오래전에 강우빈 부자와의 인연은 끊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결에 아랫배를 감싸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 누구에게도, 심지어 부모님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작은 생명이 그곳에 숨 쉬고 있었다. 조금 전 입에 댄 와인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한두 모금에 불과했지만, 아이를 품은 몸에는 그 사소함조차 불안으로 다가왔다. ____ “심 회장님...” 강우빈은 홀 안을 한참 헤매다 결국 심은지를 찾지 못했다. 대신 그는 잔을 들고 심종훈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심종훈은 웃음을 띤 강우빈을 철저히 무시하더니 곧 옆 사람과 담소를 이어갔다. “눈은 멀었고, 마음까지 가린 자가 있군. 참으로 재수 없는 꼴이지.” 그 말이 강우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순간, 그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심종훈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강우빈에게 다시 한번 날카로운 시선을 겨눴다. “심 회장님,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나요?” 강우빈은 무언가 해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섣불리 입을 뗄 수는 없었다. 사실 지금 상황이라면 ‘아버님’이라 불러야 마땅했지만, 그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심종훈은 끝내 대꾸도 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버렸다. 만약 심은지가 곁에 있었다면, 이 오만한 사위에게 뼈아픈 대가를 안겼을 터였다. 파티는 곧 마무리를 향해 흘러갔다. 한서연은 보안 요원들에게 떠밀리듯 호텔 밖으로 쫓겨났다. 다행히 문 앞의 기자들은 이미 흩어진 뒤였다. 아니었다면 실검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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