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9화 영원히 떠나지 않을게
“형님, 너무 성급하신 거 아니에요?”
백목창룡이 말했다.
그러자 하천이 호통을 쳤다.
“솔로는 나랑 그런 걸 따질 자격 없어.”
“저도 동의합니다.”
옆에 앉아있던 한애는 하천에게 솔로라고 한소리 들을까 봐 얼른 손을 들어 찬성했고 엄여수도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을 들고 말했다.
“저도 찬성이요.”
하지만 조경운과 백우상 두 주인공은 한쪽에 앉아 하천을 째리고 있었다.
“하천, 네가 내 부모도 아니고, 내 혼사를 왜 네가 결정하는데!”
백우상이 하천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허, 이게 다 널 위한 거잖아?”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백우상은 갑자기 화를 내며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천과 한애 등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조 씨, 쟤 혹시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거 아니야? 아니면 너 다른 여자 생겼어?”
엄여수가 가장 먼저 물었다.
조경운이 엄여수를 슬쩍 흘기더니 말했다.
“내가 넌 줄 알아?”
“그럼 빨리 우상 쫓아가지 않고 뭐 해?”
하천은 조경운의 휠체어를 툭 차며 말했다.
“조 씨, 만약 오늘 우상이를 설득하지 못하고 청혼에 실패라도 한다면 돌아오지 마.”
감정적인 면에서 줄곧 우물쭈물하던 조경운은 이번만은 매우 결단력 있게 변했다. 그는 얼른 휠체어를 밀며 백우상을 향해 쫓아갔다.
해변가, 백우상은 혼자 그곳에 서있었는데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태반이나 가렸다.
저 먼바다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갈매기떼를 보는 백우상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나 좀 도와줄래?”
뒤에서 조경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은 약간 질퍽거렸고 울퉁불퉁한 돌들이 조경운의 휠체어의 작동을 멈추게 했다.
백우상은 고개를 도려 조경운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조경운은 어쩔 수 없이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침이 연결된 가는 실이 손목에서 발사되어 백우상 옆의 큰 바위에 매섭게 꼽혔다.
도대체 이 실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조경운은 이 가는 실을 당겨가며 천천히 휠체어를 타고 백우상 쪽으로 다가갔다.
“너 정말 귀찮아.”
백우상은 끝내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조경운에게 다가갔고 휠체어를 밀고 해변가로 향했다.
바닷바람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모두 헝클어버렸다.
조경운은 손을 내밀어 휠체어를 밀고 있는 백우상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상, 뭔가 걱정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천왕궁이 곧 H국으로 돌아가는 것 때문이겠지? 넌 H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고.”
백우상이 침묵하자 조경운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너도 지금 천왕궁의 상황은 잘 알고 있을 거야. 우리가 H국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야. 비록 우리 천왕궁은 제2의 세계 어느 조직도 안중에 두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거기는 한 조직만 있는 게 아니니까.”
“제2의 세계 조직들이 힘을 합친다면 우리 천왕궁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잖아.”
백우상이 말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야.”
“그럼 지금 천왕궁에서 물러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거야?”
백우상은 조경운에게 급소라도 찔린 듯 한동안 침묵했다.
“그럴 필요 있겠어? 이제 여기가 네 진짜 집이야. 여기 사람들이 네 가족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 가족들이 너와 함께 마주할 거야.”
“천왕궁 전체에 네 과거를 알고 있는 건 나밖에 없어. 하천 형님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니 지금 네 심정도 난 이해할 수 있어.”
“과거는 이제 지나가게 둬. H국으로 돌아간 후 부모님과 다시 마주하게 되면 또 어때? 넌 혼자가 아니잖아.”
백우상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는데 뜻밖에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천왕궁 제1의 여장부로 불리며 혼자만의 힘으로 천왕궁 5대 천왕 자리에 앉은 독한 여인이 지금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잊을 수도 없고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아. 난 그들이 너무 미워.”
백우상이 말했다.
그러자 조경운이 말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이 있는데 너와 하천 형님의 경험은 비슷해. 하천 형님도 가족에게 버림받고 거지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섰어.”
“하천 형님은 다시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에 직면하고 원래 자신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되찾았어. 그러니 너도, 너도 한 번 시도해 볼 순 없을까?”
백우상이 눈을 감자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빠르게 스쳐갔고 한 방울의 영롱한 눈물의 그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비록 백우상은 겉으로는 강인해 보여도 결국 여자일 뿐이었다.
“저기 멀리 날아가는 갈매기 떼 봤어?”
조경운은 먼바다를 가리켰다. 이때 한 무리의 갈매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리를 이룬 갈매기들은 하늘과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 수 있대. 파트너가 함께 있으면 영원히 길을 잃지 않고 두려움도 느끼지 않으니까 말이야.”
백우상은 조경운의 말에서 무언가 깨달은 듯 천천히 몸을 구부리고 뒤에서 조경운을 안았다.
“하지만 난 정말 두려워.”
“겁내지 마.”
조경운은 백우상은 끌어안고 부드럽게 키스를 했다.
이 키스에 백우상은 모든 것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얼마간 지난 뒤, 조경운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백우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상, 나만 믿어.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난 항상 네 곁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게.”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고?”
백우상이 문득 물었다.
“그 말 진짜야?”
“진짜야.”
조경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곧 내 아내가 될 거니까 우린 반드시 영원히 함께 할 거야.”
“허허.”
백우상은 마침내 웃었고 그 웃음에는 달콤함과 행복함이 가득했다.
이 순간, 백우상은 더 이상 난폭한 천왕궁의 여장부가 아니라 사랑에 빠진 순수한 여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