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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신지은은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러 가며 전지훈에게 물었다. “재수사할 가능성은... 있나요?” 전지훈은 다소 뜻밖이라는 듯 그녀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사건을 다시 조사할 수 있습니다.” 경찰서를 나선 신지은은 곧바로 하모니아로 향했다. 조수희를 찾아가 순회공연 출연료 일부를 미리 정산받았고 그 돈을 신뢰할 만한 사설탐정에게 송금했다. 그녀가 밝혀내고 싶은 것은 단 하나, 그날 누군가가 연습실에 던진 폭죽의 출처였다. 신지은은 용서를 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안이서와 강재민에게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이었고 늦더라도 자신의 가졌어야 할 모든 걸 돌려받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 이후의 나날은 더욱 숨 가쁘게 흘러갔다. 순회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연습량은 눈에 띄게 늘었다. 하루 최소 6시간 이상 연습은 기본이거니와 신지은 또한 매일 거문고 앞을 떠나지 않았다. 굳은살과 물집은 터졌다가 다시 아물기를 반복했고 피크를 감싼 붕대는 살을 파고들어 손끝이 붉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신지은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멈추지 않았다. 한편, 강재민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며 안이서의 전담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최근 안이서의 활동이 잦아지자 강재민은 그녀를 따라다니며 일정 관리와 업무 조율을 도맡아 했다. 가끔 새벽녘에 돌아올 때면 그의 몸에는 술 냄새와 함께 안이서의 향수가 배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강재민은 늘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수어로 말했다. [오늘은 야근, 내일은 접대.] 신지은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고 예전처럼 그를 위해 불을 켜 두지도 않았다. 같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두 사람의 거리는 눈에 띄게 멀어져 갔다. 탐정 쪽에서는 간간이 진척 상황이 전해졌다. 이미 단속된 불법 폭죽 공방, 서로 맞물려 확인해야 할 여러 시간대의 단서들. 그리고 순회공연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탐정은 정리된 1차 조사 보고서와 함께 핵심 증인의 음성 녹취와 서면 진술 자료를 신지은에게 건넸다. 사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안이서에게 중대한 혐의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고 강재민이 사후에 의도적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정황 역시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신지은은 다시 경찰서를 찾아갔다. 이번에 그녀가 가져온 자료를 본 전지훈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신지은 씨, 이 자료들은 즉시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폭발 사고에 대한 정식 재수사를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거의 동시에 신지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순회공연 팀에서 온 공식 안내 메시지였다. [신지은 씨, 최종 일정 및 곡이 확정되었습니다. 첨부 파일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한 터라 신지은은 전지훈의 확답을 들은 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옷장을 열자 그녀가 쓰던 공간에는 각종 원피스와 블라우스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대부분은 부드러운 캐시미어나 실크, 혹은 아예 입어보지도 않은 새 옷들이었다. 반면, 지난 반년 동안 강재민은 색이 바랜 몇 벌의 옷을 계속해서 입고 다녔다. 그는 늘 수어로 말했다. [부담가지지 말고 편하게 입어. 그러면 네 기분도 좋아질 거야.] 신지은은 그때마다 강재민이 돈을 낭비한다고 속으로 걱정하며 사준 옷을 차마 입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속이 뒤집혔다. 그 옷들은 그저 그녀를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속에 가두는 장치였을 뿐이었으니까. 신지은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부드러워진 속옷 몇 벌만 골라 수년째 써 온 낡은 여행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서랍 맨 아래에서 혼인신고서를 꺼냈다. 그날, 강재민은 갑자기 그녀를 데리고 구청으로 갔었다. 직원은 급하게 서류에 서명과 도장을 받았고 모든 과정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류를 받아 든 강재민은 그녀의 손바닥에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글자를 써 내려갔다. [평생 너만 사랑할게.] 그때의 신지은은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울며 그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현재, 신지은은 혼인신고서를 가지고 구청의 이혼 접수창구 앞에 서 있다. 창구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성은 서류를 받아 펼쳐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서류, 어디서 발급받으신 건가요?” 신지은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작년에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어요.” 그러자 여성은 서류를 다시 밀어주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시스템에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네요. 저희한테는 신지은 씨와 강재민 씨의 혼인 신고 기록이 없습니다. 즉, 이 혼인신고서는 가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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