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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미안했어

거대한 소음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유채은은 흠칫 몸을 떨며 깜짝 놀라 손을 홱 빼더니 이불 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원래도 창백하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박준혁은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서 있는 신해정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서정아를 보았다. 늘 온화하던 표정이 잠시 굳더니 아주 짧은 순간 어색함이 스쳐 갔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유채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달랬고,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침착한 걸음으로 병실 밖으로 나왔다. “박준혁, 너 진짜 낯짝도 없냐?!” 서정아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약혼자 있는 의사가 대낮에 환자랑 그렇게 붙어 앉아 손잡고 있어? 직업 윤리도, 부끄러움도 없는 거야?” 박준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시선은 끝까지 신해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건 나랑 해정이 사이 문제야. 너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 일 아니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신해정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사무실로 와. 얘기 좀 하자.” 신해정은 가슴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억지로 눌러 삼키며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번 생에서는 가면을 벗은 뒤 그가 어떤 말을 늘어놓을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눈짓으로 서정아에게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낸 뒤, 박준혁을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박준혁은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했고, 습관처럼 미지근한 물 한 컵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그녀 맞은편 의자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우리 약혼은 여기까지 하자. 채은이는 내 첫사랑이고,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야. 처음부터 너랑 약혼한 이유도 채은이 때문이었어. 네 골수가 채은이랑 거의 완벽하게 맞았거든.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네가 내 옆에 있어야 했어.” 그 말을 들은 신해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 오래 속여 놓고, 그렇게 큰 판까지 짜 놓고, 갑자기 왜 더는 안 속이겠다는 건데? 뭐야, 이제 더 좋은 골수 기증자라도 찾았어?” 그녀의 반응에 박준혁은 분명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눈빛으로 그녀를 다시 살폈다. 신해정의 성격이라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거나, 미친 듯이 따져 물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의 태도는 분명 이상했다. 시선이 맞닿은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설마... 신해정도 다시 돌아온 건가?’ 같은 침대에서 보낸 2년, 그리고 격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끝내 태어나지 못했던 아이가 떠올라 박준혁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일부러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그래. 이미 이웃 도시에서 자발적으로 골수 기증을 하겠다는 사람을 찾았어. 적합도도 꽤 높아. 이제 와서 진실을 말하는 건, 더 이상 널 속이고 싶지 않아서야. 이 일에 너를 계속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고. 결국 이건 다 너를 위한 선택이야. 너도 새 인생을 시작했으면 좋겠어.” 그의 말에 담긴 극도의 위선이 신해정의 분노를 완전히 폭발시켰다. “박준혁, 너 진짜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뻔뻔해. 사랑이라는 말 하나로, 다른 사람 하나쯤 희생시키고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해? 네 첫사랑 살리겠다고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간 주제에, 너는 그 흰 가운 입고 의사라고 할 자격도 없어. 인간으로서도 자격 없어.” 박준혁은 분노로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단지 속았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뿐이라고 여겼다. 그는 마치 너그러이 이해해 주는 사람처럼 말했다. “과거에는 내가 너한테 미안한 게 맞아. 하지만 지금은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굳이 지난 일에 매달릴 필요는 없어. 이제는 나를 놔줘. 좋게 정리하는 게 서로한테도 이득이야.” 신해정은 벌떡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미지근한 물컵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그의 얼굴에 세차게 끼얹었다. “좋게 끝내자고? 꿈 깨.” 그녀가 당했던 모든 속임수는 절대 이렇게 끝낼 수 없었다. 물방울이 그의 각진 얼굴선을 따라 떨어지는 가운데, 신해정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박준혁, 그거 알아? 지금은 네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도 역겨워.” 박준혁은 물세례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동자에 분노가 스쳤지만, 곧 익숙한 냉정함이 그 감정을 눌러 버렸다. 그는 책상 위의 휴지를 집어 들어 천천히 얼굴의 물기를 닦으며, 여전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감정적으로 나와서 해결될 문제는 없어. 네 집안 사정, 나도 다 알아. 갑자기 약혼 깨면, 네 할머니 쪽에서 감당하기 힘들 거야.” 그는 마치 베푸는 듯한 말투로 덧붙였다. “지난 2년 동안의 정도 있으니까, 당분간은 밖에 공개하지 말고 겉으로는 예비부부처럼 지내자. 네 가족 상대하는 데는 내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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