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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환생

미처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다른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춘 듯했다. “병실에 있는 그 여자가 사실 박 교수님이 마음에 두고 있는 첫사랑이라는 걸 알면,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죠! 나는 바로 이혼한다고 봐요.” “쉿, 조용히 해요!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퍼뜨리면 안 돼요!” 그 뒤의 말은 더 이상 신해정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채은이 박준혁의 첫사랑이라고?’ 짧은 몇 마디가 칼날처럼 가슴을 깊숙이 찔러 왔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2년 전, 박준혁이 갑자기 결혼을 하자고 했던 거였구나.’ 결혼한 뒤에도 박준혁은 늘 온갖 이유를 들며 그녀를 설득해 골수 기증을 하게 했다. 그것이 결혼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신해정의 눈가에서 참지 못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속았다는 분노가 끊임없이 치밀어 올라 몸이 멈추지 않고 떨렸다. 결국, 그가 보여 준 모든 깊은 애정과 배려는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박준혁이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정교하게 골라낸 골수 그릇일 뿐이었다.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아랫배에서 몰아치듯 밀려왔고,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절망이 덮쳐 왔다. 신해정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렸으며, 세상이 빙글빙글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비틀거리며 문을 밀어 열었다. 문밖에서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두 간호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특히 연한 색 원피스 아래로 끊임없이 스며 나와 빠르게 번져 가는 피를 보는 순간,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사람 불러요! 빨리 사람 불러요! 큰일 났어요!!!” 신해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느다란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아래로 쓰러졌다.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 흐릿한 시야 속에 박준혁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당황과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미친 듯이 사람들을 밀치며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해정아,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안 돼. 네가 잘못되면 채은이는 어떡해?”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걱정한 사람은 유채은뿐이었다... ... 신해정은 잠깐 잠을 잔 것 같았다. 그때, 귀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정아, 벌써 열 시야. 박 교수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신해정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을 내려다본 뒤 주변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분명 마지막 기억은 병원에서 쓰러진 것이었는데, 다시 눈을 뜨고 보니 이곳은 웨딩드레스 숍이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 서정아가 소파에 앉아 시계를 힐끗 보며, 못마땅한 어조로 계속 불평하고 있었다. “오늘은 둘이 웨딩드레스 피팅하기로 한 날이잖아. 박 교수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두 시간이나 늦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신해정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자신을 대신해 화를 내주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믿기 힘든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해정아, 얼굴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 서정아는 급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신해정은 대답할 겨를도 없이 곧장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고, 그 순간 큰 충격에 빠졌다. ‘이건... 나 환생한 거야? 박준혁과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온 건가?!’ 신해정은 눈앞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전생의 오늘, 박준혁은 늦지 않았다. 그날 웨딩드레스를 반쯤 입어 보던 중, 그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며 유채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고 말하고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로 신해정은 줄곧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자신 때문에 한 생명이 위험해질 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바로 그 심리를 이용해 끊임없이 그녀를 압박하며 유채은을 위해 골수 기증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그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것은 단 하나의 가능성만을 뜻했다. 박준혁 역시 환생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지키며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있을 터였다. “해정아,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 놀라게 하지 마.” 서정아의 목소리에 신해정은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박 교수한테 전화해 볼까? 병원에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을지 모르잖아.” 신해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나 괜찮아.” 그녀는 손을 들어 망설임 없이 머리에 쓰고 있던 면사포를 벗어냈다. 그리고 옆에 놓인 클렌징 티슈를 집어 들어 거울을 보며 얼굴의 정교한 화장을 세게 지워 냈다. 모든 걸 끝낸 뒤, 그녀는 돌아서서 서정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병원에 가야겠어.” 두 번의 인생을 가로질러 온 어떤 일들은 반드시 직접 확인해야 했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전생에 태어나지 못한 그 아이에게도 답을 주기 위해서였다. 서정아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친구의 평소와 다른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내가 같이 갈게.” 서울 남부 대학 병원, VIP 병실 앞. 조용한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다. 신해정은 유리문 앞에 가만히 서서 작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박준혁이 문 쪽을 등지고 병상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상체를 살짝 기울인 채 유채은의 창백하고 가느다란 손을 잡고 자기 뺨에 가져다 대며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고,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따뜻하고 밀착된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마치 보이지 않는 장막이 쳐진 듯 그녀를 완전히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장면 속에서 오히려 신해정이 있어서는 안 될 침입자처럼 보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광경이었음에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신해정의 심장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아파 왔다. 그는 도대체 유채은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깊은 사랑을 연기해 왔던 걸까. 옆에 서 있던 서정아는 분노로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더는 참지 못한 그녀는 갑자기 발을 들어 올렸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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