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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혼 합의서를 변호사에게 넘긴 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강이설은 로펌을 나서 곧장 시내 외곽의 공원묘지로 향했다. 오늘은 외할머니의 유골을 안장하는 날이었고 그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 바로 옆자리를 골랐다. 묘비 앞에 국화를 내려놓는 순간 불청객이 그녀의 등 뒤에 다가왔다. 강지연은 하이힐을 신고도 흔들림 없이 걸어와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언니, 정말 우연이네. 며칠 전에 우리 집 강아지가 병으로 죽었거든. 용한 무당이 그러는데 이 자리가 제일 좋대. 설마 우리 집 강아지 여기에 묻어두는 거 반대하진 않겠지? 어릴 때부터 언니는 뭐든 나한테 양보했잖아.” 어릴 적부터 강지연은 아버지의 편애를 믿고 그녀의 치마와 방은 물론 어머니가 남긴 유품 목걸이까지 빼앗아 왔다. 강이설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시 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내 동의만 있어서는 안 되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놀란 기색의 강지연에게 다가가 무릎 뒤를 세게 걷어찬 뒤 머리채를 움켜쥐고 묘비 앞으로 거칠게 내리찍었다! “차라리 네가 가서 직접 물어봐. 이 묫자리를 너한테 내줘도 되는지!” “아악! 강이설, 이 미친년아!” 세게 부딪힌 충격에 강지연은 눈앞이 핑 돌았고 화장으로 단정히 꾸민 얼굴 위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넌 지금 재영 오빠가 사랑하는 게 나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나한테 이러면 재영 오빠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강이설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저 웃기만 했다. ‘강지연은 넌 어쩜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수 있는 거니?’ ‘신재영도, 경호원도 곁에 없는데도 감히 나를 자극해?’ 그녀의 손놀림은 점점 거칠어졌고 강지연의 울음소리조차 희미해졌을 때에야 차갑게 밀쳐냈다. “저리 꺼져. 우리 엄마랑 외할머니 눈 더럽히지 말고.” 강지연이 울면서 달아난 뒤 그녀는 피가 튄 묘비를 몇 번이고 닦아냈다. 강지연의 말 속뜻은 분명했다. 신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신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는 절대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차례나 경쟁 상대의 살벌한 수법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 칼에 베이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화재까지... 그 수많은 풍파 속에서 함께 버텨 오며 그녀는 상처를 입을 때마다 최소한 신재영이 곁에서 걱정해 주고 돌봐 줄 거라 믿었다. 그 미미한 온기 하나를 붙잡고 강이설은 이를 악물고 3년을 견뎠다. 마치 혼자서만 빠져 있던 꿈처럼 이제 그 꿈은 깨어졌다. 강지연이 기어이 그 자리를 원한다면 그녀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강이설은 가볍게 웃으며 핸드폰을 몇 번 꾹꾹 누른 뒤 느긋하게 공원묘지를 떠났다. 다음 날, 강지연이 검은 차량에 치인 뒤 끌려가듯 차에 태워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재영은 반년을 준비한 국제회의를 내팽개치고 현금 6억과 잘린 새끼손가락 한 마디를 대가로 강지연을 구해냈다. 그녀를 되찾은 뒤에는 시간표도, 일정도 모두 제쳐 두고 오로지 강지연 곁을 지켰다. 그 덕분에 강이설은 모처럼 조용한 며칠을 보냈지만 어느 오후 신재영의 옆을 지키던 경호원에게 방해받았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녀는 거칠게 붙잡힌 채 끌려가 강지연의 병상 앞에 무릎 꿇려졌다. “재영 오빠, 이건 오해일 거예요. 언니가 일부러 사람을 시켜 나를 해치진 않았을 거라고요.” 강지연은 신재영의 품에 기대어 원망 어린 눈빛을 보냈다. 신재영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바보야. 네가 너무 착해서 저런 사람한테 당하는 거야.” 그는 시선을 차갑게 강이설에게 돌렸다. “지연이는 고작 그 작은 묫자리 하나를 원했을 뿐이야. 내가 보상도 해주는데, 왜 그것조차 양보하지 못하지?” 강이설의 가슴속에 어둑한 절망이 내려앉았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묘를 고작 개한테 내놓으라는 거예요? 신재영 씨, 내가 왜 그걸 양보해야 하죠?!” 신재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연이를 모함하려고 외할머니까지 들먹이다니, 강이설. 정말 실망이다. 어쨌든 그 묫자리는 지연이에게 넘겨야 해.” 그의 말투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이건 네가 지연이에게 빚진 거야.” 옆에 있던 경호원의 태블릿 화면에는 굴착기와 작업 인부들이 그녀의 어머니와 외할머니 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비쳤다. 불안과 분노가 강이설의 이성을 집어삼켰다. “신재영!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조금만 알아봐도 외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셨고 강지연이 고의로 도발했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는 보지도 듣지도 않고 오직 강지연만 감싸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팽팽히 맞서는 모습을 보며 강지연은 눈웃음을 숨긴 채 말했다. “됐어요, 재영 오빠. 언니가 나한테 백 번만 절하면서 사과하면 될 것 같아요.” 얼음처럼 굳어 있던 신재영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네 말대로 해.” 신재영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1분 줄게. 지연이한테 고개 숙여 사과해.” 강이설의 심장은 무정한 손에 움켜쥔 듯 말도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팠다. “신재영 씨, 당신이 정말 인간이긴 해요?!” 그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50초 남았어.” 신재영은 그녀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한 채 냉정하게 말했다. 화면 속에서 대기 중인 작업 인부들을 보며 강이설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눈물과 함께 떨어진 그녀의 존엄은 차가운 바닥에 닿는 순간 산산이 조각났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이것이 바로 3년을 함께 잠자리해 온 남편 신재영이 다른 여자를 위해 분풀이하는 방식이었다. “언니는 사과도 빠르고 참 잘하네.” 강지연은 옆에서 부추겼다. “그런데 좀 더 빨리해야겠어. 안 그러면... 시간 초과야.” 강이설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고 초시계의 카운트 다운은 마치 실체가 있는 칼날처럼 목과 가슴을 갈아냈다. 시간이 끝나자 강이설은 피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쉰 목소리를 짜냈다. “제발... 멈추라고 해요!” 신재영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눈빛에 알 수 없는 감정을 스쳤다. 그는 현장의 인부들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통신 지연으로 인해 커다란 망치는 이미 묘비를 향해 세차게 내려쳤다. “안 돼!” 절망에 찬 울음 섞인 외침이 강이설의 목을 찢고 나왔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묘비는 산산이 부서졌고 먼지와 잿가루가 화면을 가득 뒤덮었다. 분노와 충격이 한꺼번에 몰려와 강이설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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